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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소금밭 … 철조망 두른 플랜트엔 군인이 촬영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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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남쪽으로 10시간을 쉼 없이 달려가자 문득 시야가 탁 트였다. 마치 꽁꽁 언 호수에 흰 눈이 덮여 있는 듯한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먼 옛날 바다였던 이곳은 수만 년 전 지각 운동으로 갑자기 솟아올랐다. 이로 인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주변 안데스 산맥에 갇혀 건조한 겨울엔 소금사막으로, 우기인 여름엔 비에 살짝 젖어 빙판처럼 변신하는 염호(鹽湖)가 됐다.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페루 마추픽추와 함께 남미 3대 관광지로 꼽히는 ‘우유니(Uyuni)’ 염호다.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 염호와 소금으로 만든 집 모습. 볼리비아 정부는 경기도 넓이의 이곳 소금사막에서 리튬을 추출해내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우유니 염호이지만 현재 이곳을 두고 살벌한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산업의 쌀’ 리튬을 잔뜩 머금은 소금물을 겨냥한 싸움인 것이다. 이곳의 리튬 매장량은 세계 부존량의 절반(540만t)에 가깝다.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기업은 물론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한국·일본·중국·프랑스 등 세계 각국 컨소시엄이 앞다퉈 개발사업에 뛰어든 건 이 때문이다.

리튬에 대한 볼리비아 정부의 집착도 강했다. 염호를 한 시간여 가로질러 남쪽 끝자락에 이르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사현장이 나타났다. 볼리비아 국영 광물자원공사 ‘코미볼(COMIBOL)’이 짓고 있는 파일럿 플랜트다. 입구엔 날카로운 눈초리의 군인이 경계근무 중이었다.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군인이 따라붙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이반 키스페 현장 소장은 “정부가 매달 진행 상황을 직접 챙기고 공사비를 줄 정도로 관심이 크다”며 “올 11월까지는 완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볼은 이곳에서 리튬 추출 기술을 독자 개발할 계획이다. 리튬 생산을 정부가 독점하기 위해서다. 염호 곳곳에도 소금물을 증발시켜 리튬을 추출하는 실험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호세 피멘탈 볼리비아 광업부 장관은 “외국 기업과 기술 파트너 계약을 맺더라도 리튬 생산은 정부가 독점할 것”이라며 “외국 파트너에겐 리튬을 구매할 수 있는 우선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리튬 생산을 독점하려다 보니 사업 진척은 거북이걸음이다. 5년째 진행해온 독자 기술 개발도 뚜렷한 성과가 없다. 이러다 보니 기대에 부풀었던 지역사회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달 15일엔 우유니가 속한 포토시 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한국 시찰단이 시위대에 24시간 억류되기도 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리오물라토 시위원회 레네 미차가 위원장은 “정부가 우유니 개발사업을 발표한 건 6~7년 전”이라며 “아직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본격적인 리튬 생산에 필요한 전기·용수·도로 등 인프라 건설도 요원해 보였다. 라파스에서 우유니에 이르는 600㎞ 도로 중 3분의 2가 비포장이다. 용수는 파일럿 플랜트 건축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전력 사정은 더 심각하다. 볼리비아 정부는 올해 안에 파일럿 플랜트를 완공한 뒤 설비를 증설해 2014년부터는 연 3만t의 탄산리튬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본 조달 계획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광물자원공사가 국내 4개 기업과 합작으로 볼리비아에 설립한 현지법인 코로코브레 문영환 대표는 “우유니 개발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볼리비아 정부는 생산 독점을 고집하고 있으나 경기도 넓이의 우유니를 정부가 독자 개발하는 건 무리”라며 “사업권을 둘러싼 볼리비아 정부와 세계 각국 컨소시엄 간의 힘겨루기도 계속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파스·우유니(볼리비아)에서
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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