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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 대선후보 되면 당연히 인정해야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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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03면

4일 오전 9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입구에 한 등산객이 들어섰다. 베이지색 등산모자에 흰색 반팔 티셔츠, 검은색 가방을 멘 그는 남색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특임장관에 임명된 이재오(사진) 의원이었다. 그의 토요일 아침은 늘 서오릉에서 시작된다. “일주일에 유일하게 내 시간을 갖는 시간이지.” 기자와 반갑게 악수를 나눈 그가 경내로 들어서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한 시간을 함께 걸었다. 장관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다. 대화는 해장국집과 노인복지관으로 옮겨 가며 계속됐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인터뷰는 오전 11시50분이 돼서야 끝났다.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 이재오 특임장관

서오릉·해장국집 돌며 2시간50분 대화
-7월 재선거에서 다시 당선됐다. 감회는.
“주민들은 항상 자기와 가깝게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 자기와 똑같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찾는다. 그동안 내가 많이 채색이 됐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세상이 온통 나를 권력의 눈으로 보게 됐다. 하지만 총선에서 떨어지고 1년 미국에 다녀왔는데 행동하는 게 예전과 똑같더라, 이재오는 변한 게 없더라, 주민들이 이렇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쉽진 않았을 텐데.
“처음엔 솔직히 냉랭했다. 그래서 배수진 치고, (당 사람들에게) 한강을 넘지 말라고 하고 혼자서 골목골목을 누볐다. 밤늦도록 진심으로 얘기하니까 조금씩 믿어 주더라. 시장에서, 목욕탕에서 하루에 다섯 번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진심일까, 주민들끼리도 서로 검증해 보지 않았겠나.”

걸어가면서도 오가는 주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인사는 여전했다. 50대 아주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여기서 많이 뵈면서 왕팬이 됐다”며 “김태호 총리 후보자 같은 일은 더 이상 없게 해 달라. 깨끗해야 국민이 믿고 따르지 않겠나”고 했다.

오전 9시15분. 장희빈의 대빈묘 앞에 도착했다. “주말마다 장희빈과 얘기를 나눈다. 요즘 드라마 ‘동이’를 보니까 너무했더라고 하면 ‘실제론 그렇지 않아. 드라마라서 그렇지, 나는 독한 여자가 아냐’라고 한다(웃음).”

-이명박 정부 성공도 부탁하나.
“당연하지. 왕들이시여, 이명박 정부를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잘 모시겠습니다.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서 얘기해 주십시오. 그러면 ‘잘 지켜보고 있다. 우리도 다 옛날에 왕 할 때 어려움이 있었느니라’고 답해 주신다.”

-다른 정치인들도 찾아오면 어떡하나.
“41년 전부터 선점해 놔서 괜찮다(웃음).”

-당선되자마자 장관이 됐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유권자와의 약속은 어떻게 지킬 건가.
“딴 게 있나. 공약 지키는 거지. 이렇게 주말마다 지역구 돌고.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금귀월래(金歸月來)를 얘기했던데(본지 8월 8일자 8면) 바로 그거다. 지역구에서 내 별명이 조이(JOY)다. 하도 웃으면서 인사한다고 해서, 허허.”

오전 9시30분 창릉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내일 교회에서 뵐게요, 집사님”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장로 아니었느냐’고 묻자 “장로 고시에서 떨어졌다. 지금은 아침예배 때 주보 돌리는 일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불쑥 기자의 등을 두드렸다. “이 세상에 가장 즐거운 게 뭔지 아나. 사람을 만나는 거다. 즐거운 만남이 부담이나 불편을 주면 안 되잖아. 그런데 우리 정치가 그런 꼴이다.”

태풍 곤파스 탓에 나무들이 쓰러져 길이 막혀 있었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화제를 조금씩 현실정치로 옮겨 갔다.

-국민은 특임장관이 뭐 하는 자린지 의아해한다.
“예전에 무임소장관과 정무장관이 있었잖나. 그게 지금의 특임장관이다. 특별한 임무 없이 내각 전체의 맺힌 부분을 풀어 주고 당과 정부, 청와대 사이에서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게 내 임무다.”

-특별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게 친서민이니까 부처들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원활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거기에 공정한 사회까지. 핵심은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키고 이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보좌하는 것, 이게 특임이다.”

-이 대통령의 어떤 점에 끌렸나.
“1996년 15대 국회 때니까 벌써 14년 전이네.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뭘 해야 우리나라가 발전하느냐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민주주의만 외치다 국회에 막 들어가 국가 운영 경험이나 경제에 대한 경륜이 없었는데 이런 분이 나라를 맡으면 역사의 획을 그을 수 있겠다 싶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이 장관의 인사를 받고는 말을 건넸다. “이제 고개 좀 덜 숙여. 어떤 땐 보기 그렇더라고.” 이 장관이 답했다. “그게 편해요. 편히 쉬다 가세요.”

‘이재오 인사법’에 의원들 10도는 더 굽혀
-허리는 괜찮나.
“(실제 모습을 취하며) 예전엔 이렇게 뻣뻣이 서서 인사하다가 그 후엔 간단히 목례만 했는데 지금은 이게 훨씬 편하다. 허리 끊어지겠다고들 하는데 자꾸 하면 괜찮다(웃음). 의원들 얘기가 이재오 인사법 이후 전국의 국회의원 인사 각도가 10도는 더 내려갔다더라. 정치인은 고개를 숙일수록 좋은 법이다. 고개 숙이는데 돌아서서 욕할 수 있겠느냐. 이게 섬김의 리더십이다. 자기를 낮춰 남을 섬기는 것.”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이 대통령이 되기까진 그야말로 투쟁의 역사였다. 그 후엔 섬김의 역사인데 저번에 떨어져서 2년 늦어진 거다. 내 정치의 1막은 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끝났다. 이제 2막, 이재오식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게 뭐냐, 바로 섬김의 정치다.”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90도 허리 굽혀 인사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유신의 딸과는 같이할 수 없다’고 한 적도 있지 않나.
“같은 당에서 정치하는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지. 정치적으로 모든 생각이 같을 순 없지만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면 다 풀리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면 된다. 내 정치의 2막은 이렇다. 정치인이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가 없다. 과거는 역사의 장으로 넘겨야 한다.”

-섬기고,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지. 진정성은 시간이 증명해 줄 거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지 않나. 시간이 약이라고.”

-박 전 대표가 2012년 대선 후보가 되면 인정할 건가.
“인정해야지. 당의 후보가 되면 당연히 인정해야지.”
한 시간여 산책을 마치고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선지해장국 주세요~.” 마주 앉은 그와 좀 더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미국에 가 있을 땐 어땠나.
“미국과 세계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세계의 눈으로 한국을 보는, 나로서는 인생에서 갖기 어려운 기회였다.”

-조바심도 났을 텐데.
“꼭 자기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옳은 일이라면 내가 아닌 어떤 사람도 하게 돼 있다. 17대까진 ‘내가 해야 한다, 딴 사람은 안 할 거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옳은 일이라면 앞장서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불편과 오해, 갈등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2막을 연 정치인 이재오의 꿈은 뭔가.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고 국민이 정말 좋아할 정치를 하는 거다. 이 길에 들어섰으니 뭔가 끝을 봐야 할 것 아닌가.”

-그 끝은 대선주자인가, 킹메이커인가.
“(허허 웃으며) 정치적 질문엔 정치적 답변밖에 할 게 없다. 2년 반 뒤의 일을 어찌 알겠나. 그때도 살아 있을지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이명박 정부 후반기를 이끌어 갈 대통령의 구상은 뭔가. 친서민과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는 던졌는데 진정성엔 아직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공정한 사회 하자고 각료도 날린 것 아니냐. 정치와 공직사회·기업 등 세 분야가 깨끗해야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게 친서민의 핵심이자 공정한 사회의 근간이다. 임기 후반기에 이걸 이뤄 선진 일류국가로 가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게 꿈이다. 이게 남은 2년 반 이명박 정부에 맡겨진 시대적 사명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논란은.
“그것도 공정한 사회의 잣대로 보면 답이 나올 거다.”

-공정한 사회와 함께 정치인 이재오 2막 중 서막이 올라가는 건가.
“성경에도 나오잖느냐.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고. 전반기는 이렇게 지나갔지만 후반기는 다를 거다.”

-이 장관이 올 하반기엔 개헌, 내년 상반기엔 대북특사에 올인할 거란 얘기가 돈다.
“(약간 놀라며) 진짜? 야당 의원들 만나면 개헌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야 정치가 선진화된다. 죽기 살기 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안 되면 제도를 바꿔야지. 선거제도를 바꿔야 지역이 통합되고, 그게 통일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동서화합이 되면 한국 정치가 20년은 발전하고 통일도 10년은 앞당겨질 거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사심을 버려야 한다. 나부터 그럴 거다.”

-후임 총리는? 경제전문가 얘기가 많다.
“아무래도 후반기엔 대통령이 정치에 전념해야 하지 않겠나. 공정한 사회, 크고 작은 권력을 깨끗하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하니까. 가능한 한 빨리 지명할 거다.”

-4대 강 속도 조절론이 나온다.
“그건 특임장관 소임이 아니라 내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가 옆에 있던 김해진 특임차관을 보며 한마디했다. “제갈차관을 둬서 내가 행운이지, 허허.”

후임 총리는 경제전문가로
15분쯤 차를 달려 오전 11시8분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도착했다. 서예실과 장기방에 들어서자 연방 노인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탁구장에선 할머니와 탁구도 쳤다. 이 장관이 헛스윙을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그럴 때 사진을 찍어야지”라고 말했다.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2층 대강당에선 할머니 200여 명이 노래교실을 열고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모자를 벗고 깍듯이 인사한 이 장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지난번에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비법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죠? 많이 움직이고, 많이 웃고, 그리고 소식(小食)하시라고요.” 그러고는 “신곡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며 18번을 부르겠다고 했다. ‘누이’를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다.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

헤어지면서 민주당에 대해 물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정치를 잘 알고 지혜로운 분
이니까 잘될 거다.” 떠나려는 순간 유명환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던 그가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에 또 봄세.” 은색 스타렉스 GLX가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동행 인터뷰를 한 지 2시간50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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