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캣 인수 다음 날 1대 100 미팅, 직원들 안심시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24면

박용만 회장

Q.M&A의 관건이 PMI(post-merger integration·인수합병 후 통합)라고 했는데 PMI가 뭔가요? PMI의 성공조건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어떻게 해야 피인수 기업과 인수 기업 구성원 간의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까? 피인수 기업의 문화와 색깔은 인수 후에도 유지해야 하나요? 피인수 기업의 구성원들이 떠나겠다면 말려야 하나요?

경영구루와의 대화<3> 박용만 두산 회장③

A.PMI는 기업을 인수한 후 해당 기업의 미래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수 기업 측이 벌이는 활동을 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인수 측과 피인수 측 임직원의 지향점과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일입니다. 지향점이란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업 목표와 전략을 말합니다. 가치관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해당 전략을 구사할 때 바탕이 되는 경영철학이에요. 단적으로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사업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이렇게 해야 기업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것에 피인수 측도 동의하도록 절차를 운용해야 합니다. 또 그런 전략을 잘 운용하고 인수 측의 경영철학과 가치관을 전면 수용할 사람을 피인수 측에서 골라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피인수 기업 측 임직원들로서도 지향점이 뚜렷해집니다. 이 지향점에 맞춰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로 피인수 측 경영진을 구성해야 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렇게 지향점과 가치관의 합치를 이루는 게 PMI의 요체입니다.

피인수 측이 동의하지 않는 가치관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강요와 공포에 의한 표면적 동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수 측의 가치관을 수용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 공동선 달성에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가령 인수팀이 뜰 때 도열해서 인사하지 않았다고 몇 사람 자른다고 칩시다. 다음부터 도열은 하겠지만 그런다고 그게 몸에 배겠습니까?

인수 후 인수 측의 가치는 올라가는데 피인수 측 가치가 훼손돼 기업의 총체적인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면 PMI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가치가 많이 오르지는 않더라도 인수 기업의 가치가 많이 올라 전체 파이가 커지고 그 혜택이 양쪽에 돌아간다면 보통 피인수 측을 설득할 수 있어요.

인수팀의 규모는 정답이 없습니다. 가령 사업적인 지향점은 분명한데 두 기업의 경영철학이 너무 다르다면 사람을 많이 파견해야 합니다. 가치관을 통일하기 위해 수범을 보일 변화의 에이전트를 피인수 기업에서는 많이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일 사람을 많이 보냈다가 두 집단 간에 가치관의 괴리가 커져 충돌이 일어나겠다 싶으면 적게 파견하는 게 좋습니다. 요컨대 지향점과 가치관의 일치를 빨리 달성할 수 있는 규모가 적정 규모입니다.

인수팀 규모는 피인수 기업의 크기와도 별 관계가 없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크기보다는 PMI 작업의 수요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업량이 많지 않으면 인수한 회사가 크더라도 적은 인원을 파견할 수 있다는 거죠.

PMI가 성공하려면 피인수 기업이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피인수 측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두산이 2007년 미국의 소형 건설장비 업체 밥캣을 인수했을 때의 일입니다. 딜을 끝내자마자 서울로 돌아와 보고를 마친 후 다음 날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현지 임직원들과 1대 100으로 타운홀 미팅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로서는 아시아 기업이 인수를 했으니 생산시설을 중국이나 한국으로 옮긴다든지, 기술을 빼낸 다음 문을 닫는다든지, 대대적인 고용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을 거예요. 우리가 인수한 목적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모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를 글로벌 톱5 안에 드는 세계적인 건설장비 회사로 만들기 위해 인수했고, 생산시설을 옮기는 일도, 브랜드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도 없을 거라고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인수 초기에 품을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한 겁니다.

피인수 기업과 인수 기업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려면 가치관과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인수 측은 이익을 보고 피인수 측은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일치시켜야 하는데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건 강력한 이해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면 피인수 기업의 구성원들도 발전과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만일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모든 기회를 인수 기업 측이 독점해 버리면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래서 결합의 과실을 두 조직이 공유하게 될 것이란 믿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피인수 기업 사람들로서도 장밋빛 미래가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야 한다는 거죠. 믿음은 화학적 결합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PMI 과정에서 피인수 측의 저항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항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과정을 설계하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고 합리적인 계획과 준비 없이 사람 위주로 PMI를 하겠다고 달려들면 저항에 부닥칩니다. 의사결정자가 직관적으로 저 회사 인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인수 후 몇 사람 파견하면서 너는 생산 담당, 넌 영업 담당 식으로 하면 반드시 충돌이 생깁니다. 피인수 측에서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와 자기들끼리 방향을 정하겠다고 하니 수긍을 하겠어요?
피인수 기업의 문화와 색깔은 인수 후에도 유지해야 하는가? 조건부 예스입니다. 피인수 기업의 가치 극대화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그 문화와 색깔을 굳이 없앨 까닭이 없어요. 인수 측이 이식하려는 문화보다 피인수 측 고유의 문화가 기업 가치의 극대화에 더 바람직하다면 당연히 유지해야죠. 감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시장 중심적으로 접근하면 답이 나옵니다.

피인수 기업의 구성원들이 떠나는 것을 말려야 하는가? 역시 조건부 예스입니다. 피인수 기업의 직원들이 떠남으로써 기업 가치 극대화가 훼손된다면 적극적으로 잡아야죠.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말리더라도 적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두산은 인수 후 사람을 대거 내보낸 적이 없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사람을 활용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사 시스템은 인수 후 철저히 바꿔야 합니다. 인사 시스템이야말로 인수 측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어떻게 평가받고 보상받느냐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규범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기획·정리=이필재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