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후유증 앓는데 재발 아니라고 진료비 갑자기 8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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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강서구 임모(57·여)씨는 2005년 6월 국립암센터에서 자궁내막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대장과 소장에 문제가 생겨 80%를 잘라냈다. 다행히 그동안 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대신 심각한 후유증이 따랐다. 영양 흡수가 잘 안 돼 월 두 차례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고 인공 장루(항문)를 달면서 3급 장애인이 됐다. 우울증 증세가 와서 치료제를 달고 산다. 장에 문제가 생겨 수시로 항생제를 먹는다.

그런데 이달에 진료비를 보고 놀랐다. 그전까지는 월 4만~5만원 정도를 냈으나 40만원 가까이로 늘어나서다. 진찰료·인공 장루·약값 등의 부담이 6~10배로 불었다. 하지만 임씨는 수입이 거의 없다. 이달은 겨우 진료비를 댔지만 앞으로가 막막하다.

임씨의 사촌오빠 손모(60)씨는 “암 때문에 후유증과 합병증이 생겼는데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진료비를 더 내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손씨가 흥분하는 이유는 이달 들어 진료비 경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9월 암 환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건강보험 진료비의 10%를 내도록 했고, 지난해 12월 5%로 낮췄다. 암 발생 초기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적용 기간을 5년으로 제한했는데 이달 들어 탈락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암 환자가 급증하는 점, 올해 건보 재정 적자가 1조원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들어 이번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암으로 인해 후유증이나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다. 악성뇌종양 환자 A씨(20)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성장호르몬 미분비, 성조숙증, 시력장애 등의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 4~5군데를 다니고 있는데 이달부터 부담이 5%에서 60%로 올라간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골수이식을 한 급성 백혈병 환자의 30~40%가 폐·간 등에 합병증이 생기는데 치료비 부담이 올라가면 합병증 관리가 안 돼 치료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5년 후에도 글리벡을 계속 먹어야 하는 만성골수성백혈병환자 ▶간·신장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 ▶암 재발방지용 약(타목시펜 등 4가지)을 먹어야 하는 유방암 환자 등의 불만도 크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희대 유방암센터장은 “유방암 환자의 60%가 타목시펜 등의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생존한 환자들도 대부분 정기적으로 재발 여부 검사를 받는다. 정부에 등록된 암 환자 11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5년 생존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50만 명 이상이 이 같은 검사를 받는다는 뜻이다. 뇌 종양이 재발하지 않은 환자가 양전자 단층촬영(PET)을 하면 3만5000원이던 부담액이 이달부터 43만원으로 오른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는 “의사가 재발 여부를 추적 검사해야 한다고 인정한 경우에 한해 5% 규정을 계속 적용하고, 환자 부담을 5%에서 최고 60%로 한꺼번에 올리지 말고 몇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김동욱 교수는 “암으로 인한 합병증은 나을 때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건복지부 은성호 보험급여과장은 “백혈병, 암 재발 검사, 합병증 등을 어떤 식으로든 보완하고 1년 보험 진료비를 200만~400만원만 부담하는 현행 상한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황운하 기자

◆암 진료비 경감제도=건강보험이 되는 암 진료비의 5%만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로 환자별로 5년만 적용된다. ‘5년 생존=완치’라는 의학적 판단이 깔려 있다. 다만 5년 뒤에도 암이 낫지 않았거나 재발하면 5% 규정을 계속 적용한다. 노무현 정부 때 건보재정 흑자가 생기면서 암·심장·뇌질환에 도입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중증화상환자와 희귀·난치병 환자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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