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당대의 문사(文士)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전부인가? 그의 사망 소식은 영결식 전날 포털의 검색어 1위를 지켰다지만, 고인에 대한 자리매김이 충분한 것 같진 않다. 그가 쓴 신화 책을 읽었다는 이는 꽤 많아도 소설이, 그의 문학작품이 새로웠다고 말하는 눈 밝은 이는 의외로 드물다. 이렇게 숭숭 구멍 뚫린 풍토에선 이름값이 곧 업적의 전부로 통한다. 소설·신화·번역 세 부문 중 어떤 성취가 이윤기의 몫이고, 한국문화에 대한 진정한 기여인가? 냉정하게 말해 그가 불 지핀 신화 붐의 경우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초등생까지 신화 책을 읽게 한 건 일단 그의 공이 맞다.
하지만 그는 제우스·헤라클레스 이름을 외는 차원을 넘어 우리 신화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지길 원했다. 당장 표준으로 통하는 그리스신화를 넘어 동북아신화 재발견까지 원했는데, 본인은 그 목표까지 이루진 못했음을 지적해야 한다. 어쨌거나 신화 붐에 치인 게 이윤기의 본령인 문학인데 신화가 꼬리라면, 문학은 몸통이다. 그에 대한 고인의 자부심도 컸다. 내가 아는 한 단편집 『나비넥타이』, 장편소설 『하늘의 문』은 우리말로 된 가장 세련된 문장이다. 근현대문학을 통틀어 그렇다. 유감이지만 대중적 저변을 확보하진 못했다. 지식인 소설을 지향한 탓도 있지만, 때를 못 만났다.
문학이 죽은 1990년대 이후 주로 작품활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질만으로는 염상섭·김동리·이효석으로 이어지는 현대산문의 장인(匠人) 반열에 속한다. 말만 요란했던 신세대문학의 와중에 정통소설의 바통을 이은 것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이고, 조금 위안이 되는 건 빛나는 번역문학의 유산인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등을 맛깔스런 우리말로 빚어낸 공로라니! 누구 말대로 해방 이후 번역은 이윤기 이전과 이윤기 이후로 확연히 갈릴 정도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