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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10시간 만에 사기 피의자 된 대한민국 국새제작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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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4대 국새 제작은 한 편의 ‘사기극’으로 결론 났다.

전 국새제작단장 민홍규씨가 ‘국새 의혹’과 관련된 조사를 받기 위해 1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전통기법은 모른다”고 시인했다. [오종택 기자]

“전통 가마로 굽는 전통 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전 국새제작단장 민홍규(56)씨는 1일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했다. 민씨는 이날 오전 경찰에 출두할 때만 해도 전통 국새 장인 같은 자신감을 보였다. 흰색 한복 차림으로 서울경찰청에 나온 그는 취재진 앞에서 “전통 기법은 잘 보존돼 있다. 4대 국새도 산청 대왕가마에서 (전통 기법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사항은 경찰에서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씨는 경찰 조사가 진행된 지 10시간여 만에 사기 피의자로 전락했다. 경찰은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민씨의 작업장에서 전통 기법으로 주물 제작을 한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씨를 추궁했다. 말문이 막힌 민씨는 “국민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6월 국새제작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한 사기극이 3년2개월여 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불거진 국새 제작 의혹은 국새를 제작하고 남은 금 200여 돈의 행방에 대한 논란에서 출발했다. 민씨와 함께 국새 제작에 참가했던 주물 장인 이창수씨가 “남은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일부 유력 정치인이 실제 금도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국새 논란은 “국새 자체도 전통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지난해 12월 국립민속박물관이 편찬한 국새백서에도 “국새 거푸집을 현대식 가마에서 구웠다”고 기록된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전통 기법으로 국새를 만들겠다며 사업을 시작한 행정안전부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민씨는 ‘원천기술’을 가졌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행안부의 검증 과정에서는 “기술은 있지만 600년 비전(秘傳)을 알려줄 수 없다”며 피해 갔다. 경찰 관계자는 “민씨의 사기를 입증하기 위해 그의 이력과 경력, 작업장과 작품 등을 철저히 조사해 다양한 질문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국새 의혹 일지

▶ 2007년 6월 : 당시 국새제작단장 민홍규씨, “전통적인 방식에 의한 진흙 거푸집으로 제작하겠다” 발표

▶ 2010년 8월 18일 : 국새제작단에 참여한 이창수씨, “4대 국새가 전통 방식 아닌 현대식으로 제작됐으며, 제조하고 남은 금 800~900g 행방 묘연” 의혹 제기

▶8월 19일 : 행정안전부, 경찰에 민씨 수사 의뢰

▶8월 27일 : 서울경찰청, 민씨 이천공방 등 압수수색

▶ 8월 30일 : 서울경찰청, “압수품에 전통식 국새 재료 없었다” 밝혀

▶9월 1일 : 민씨, “국새 전통 원천 기술 없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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