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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학사학위 따는 한국사이버평생교육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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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노력해서 안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대학의 교정을 거닐 때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던 김수민(42)씨. 그러나 지금까지 배움의 끈을 놓아본 적은 없다. 한국사이버평생교육원(한사평)의 인터넷 강의를 독학하며 전문학사(전문대 졸업 자격), 학사(4년제 대학 졸업자격)까지 따내 어엿한 대학 졸업자가 됐다. 지금 그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모든 전기소방시설을 관리하는 전기설비팀 팀장이다. 김 팀장처럼 현장에서부터 성공을 꿈꾸는 젊은 인생후배들이 그를 만났다. 항공호텔경영 등 전문학교로 진학 해 전문지식과 기술로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학생들이다.

막노동하며 배워야하겠다는 생각 절실

“이 곳에서 4600여 개의 매장에 공급되는 전기승강시설조명 등 모든 전기소방 시설들을 관리합니다.“ 지난 20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전기소방 시설 종합상황실. 총 면적 10만평에 이르는 대형 쇼핑몰의 시설운영현황이 상황판에 자세하게 표시되고 있다. 이 날 이곳을 찾은 국제호텔관광전문학교의 조황민(19)씨와 한국항공전문학교의 김예림(18)우청원(19)최은비(19)씨는 종합상황실의 규모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이 곳의 시설 총괄책임자인 김 팀장이 다음 달 1일 학사 학위를 수여 받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랬다. 대학졸업장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팀장이 남들보다 15년이나 늦게 학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현장에서의 뚝심과 주경야독의 노력으로 얻은 성공이다.

김 팀장의 고향은 전남 목포에서 54km떨어진 ‘비금도’라는 섬이다. 고등학교 졸업후 가정형편 상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군대 제대 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첫 일터는 미도파 백화점 건설현장이었다. 밤에는 창고에서 쪽잠을 자며 9개월을 일해 겨우 옥탑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학업에 대해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건설현장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항상 기름 냄새에 절은 작업복을 입고 힘든 노동을 하며 느꼈죠. 이대론 희망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작업을 지시하는 관리자처럼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화려한 성공까진 아니지만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세상을 살고 싶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다시 책을 붙들게 만들었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스스로 만드는 것

김 팀장은 먼저 전기소방 관련 기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건설현장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인 애경백화점 시설관리 부서로 직장을 옮겼다. “환경이 안된 다면 내가 그 환경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3년 만에 첫 자격증을 땄다. 세상을 다 얻을 만큼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건 자격증도 아니다”라는 주위 동료들의 냉대였다. 세상의 조롱에 의기소침 할 법도 하지만 김 팀장은 도리어 오기가 발동했다. “독하게 맘 먹고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격증 공부가 지금은 7개의 전기소방 관련 자격증으로 결실을 맺었다. 현장에서 경력과 자기계발로 인정받게된 그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최씨는 “대학 욕심이 나지는 않았나요? 사회에선 대학 졸업장 같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라며 김 팀장에게 당시의 고민을 물었다. “처음에는 대학을 꿈도 못 꿨죠. 그런데 승진을 하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록 욕심이 나더군요. 야간 대학원을 다니는 동료들을 보며 또 자극을 받았죠.”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 만에 다시 대학에 대한 꿈을 꿨다. 그러나 일을 하며 대학을 다녀야하는 상황이어서 야간대학이라 해도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지인의 추천으로 한사평을 알게 됐다. 2006년 8월, 40세의 나이로 등록했다. 학점은행제로 학사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에 망설임도 없었다. 모든 수업이 인터넷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의 종류도 다양해 전기 전공 과목 뿐아니라 경영부동산투자전통예절 등 교양과목 수업까지 착실히 들을 수 있었다. 현장 실무지식에 이론이 갖춰지니 회사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일이 끝난 뒤 매일 3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전문학사를 마친 뒤 140학점을 취득해 학사 자격까지 얻었다.

“이 세상에서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

“이제는 아이 학교에서 가끔 하는 부모 학력조사 때도 당당하게 대학 졸업이라고 씁니다. 하하.” 남들은 웃을 지 모르지만 김팀장에겐 어떤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단다. 김 팀장은 현재 컴퓨터활용능력 1급 자격증과 건축설비기술사 공부뿐 아니라 대학원 과정도 준비 중이다. 작은 회사라도 직접 경영해 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조씨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진 않았냐”며 고충을 물었다.

김 팀장은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수첩 첫 머리에는 “이 세상에서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건강,부,영어공부,자녀교육 등 8가지 목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 팀장은 컴퓨터, 책상, 차, 집안 곳곳 눈에 보이는 곳에 자기 목표들을 붙여놨다. 힘이 빠지고 힘들 때는 이것들을 되새기며 자신을 추스렸다.

김 팀장은 학생들에게 “평생교육과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명문대학에만 눈을 가두지 말고 긴 시간을 들여 자기계발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제가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자기계발에 대한 노력이었어요. 중요한 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주위의 신뢰도 얻고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사진설명]국제호텔관광전문학교의 조황민(왼쪽 첫번째)씨와 한국항공전문학교의 김예림최은비우청원 (왼쪽 두번째 부터)씨가 지난 20일 김수민씨가 일하는 근무 현장을 찾았다. 김씨는 이들에게 "평생공부하며 자기 계발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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