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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 해방 60년] "100여만명 희생된 나치 살인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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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물관 안내원 로레타는 아우슈비츠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치는 왜 이곳에 수용소를 세웠나.

"당초 이곳은 폴란드군 막사였다. 유럽의 중심부로 교통 요지다. 1940년대 6월부터 정치범 수용소로 이용했다. 제1수용소에는 모두 28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재소자가 늘자 41년에는 이곳에서 3km 떨어진 브제진카(비르케나우)에 제2수용소를 세웠다. 인근 모노비체 지역에는 제3수용소가 건설됐다."

-얼마나 많은 인명이 학살됐나.

"아우슈비츠는 나치의 대표적인 살인공장이다. 40~45년 초까지 나치는 100만명이 넘는 유대인, 15만명의 폴란드인, 10여만명의 집시와 소련군 포로, 동성애자, 정치범들을 실어날랐다. 42년 6월 독가스실이 본격 가동됐다. 대략 110만~150만명이 독가스와 총살, 굶주림 등으로 숨졌다. 희생자의 90%는 유대인이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여기인가.

"이곳에서 촬영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마치 가축처럼 화물열차에서 끌려 내려와 일렬로 줄을 선다. 나치는 현장에서 이들을 노동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노약자로 분류했다. 노약자는 샤워를 시켜준다며 옷을 벗긴 뒤 가스실로 보내 학살됐다. 나머지는 머리를 깎고 팔에 등록번호를 새겼다. 강제노역에 동원돼 많은 수가 탈진과 학대로 숨졌다. 또 생체실험의 대상이 됐다."

-60년 전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상황은.

"1월 27일 소련군이 도착했을 때 기진맥진한 7650명의 병자와 600구의 시체가 그들을 맞았다. 나치는 앞서 1월 17일 학살의 흔적을 지우려고 독가스 시설과 화장터를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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