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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논객 글렌 벡 “내겐 꿈이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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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 워싱턴 기념탑과 마주선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는 20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이들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는 명연설을 남겼다.

미국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28일(현지시간) ‘미국의 명예 회복’을 기치로 내건 보수진영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은 1963년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같은 장소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명연설을 한 날이다(아래 사진).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이날 집회에 대해 “킹 목사의 뜻을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 AP=뉴시스]

킹 목사의 연설 47주년 기념일이었던 28일(현지시간) 같은 장소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들은 킹 목사와 같은 진보가 아니었다. ‘미국의 명예회복’ 기치를 내건 보수진영이었다. 미 언론은 전국에서 몰려든 보수진영 참가자들이 10만여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으며, 워싱턴 기념탑 주변의 내셔널 몰에는 이들을 태우고 온 전세 버스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사람은 보수성향의 케이블TV 뉴스채널 ‘폭스 뉴스’의 뉴스 진행자이자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글렌 벡. 오바마의 증세 정책 반대에서 시작해 보수적인 풀뿌리 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티파티 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인물이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오바마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벡은 “킹 목사가 말한 꿈은 백악관의 흑인(오바마를 지칭)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며 “우리는 특별한 정의, 사회적 정의가 아니라 그야말로 평등한 정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야말로 시민 인권운동의 상속자이며, 뒤틀린 킹 목사의 메시지를 끄집어내 이를 제대로 복귀하고 완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티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도 참석해 미국의 전통적 가치 회복을 주장했다. 페일린은 이날 모인 청중을 ‘애국자’로 치켜세운 뒤 “우리는 킹 목사의 정신을 느낀다”며 “미국을 재건하고, 미국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라크전에 다녀온 아들을 키운 엄마”라며 “킹 목사의 유산을 지키는 길은 군에 복무하고 있는 미국의 아들과 딸들을 명예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중들은 “미국”을 연호했다.

한편 알 샤프턴 목사 등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이날 집회가 킹 목사 연설기념일에 맞춰진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 중 일부는 “킹 목사의 뜻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인근 한 고등학교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5㎞ 떨어진 링컨 기념관까지 행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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