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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기업인 출신 6070, 전통문화연구회서 ‘늦깎이 열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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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년을 마치고 공부에 재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한문고전을 배우고 있는 60세 이상 젊은 노인들. [최승식 기자]

“맹자왈… 지성이부동자, 미지유야(孟子曰… 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극히 성실하고서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자는 없다).”

27일 오후 2시,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411호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회장 이계황). 한문 고전을 익히는 수강생 20여 명의 낭독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수강생 절반 가량이 60세 이상. 직장을 은퇴하고 다시 찾은 ‘늦깎이 열공’ 현장이다.

전통문화연구회는 ‘도심 속 서당’이다. 1988년 전통문화의 현대화를 목표로 문을 열었다. 동양고전 교육과 번역이 주요 사업이다. 요즘 이곳을 찾는 ‘젊은 노인’이 부쩍 늘었다. 올 7~8월 여름학기 수강생 200여 명 중 60세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정년퇴임 뒤 여행도 다니고 이런저런 운동도 해봤지만 공부가 최고더군요. 며느리·손자도 저의 공부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다 하네요, 하하하~.”

철도청 전기국장을 지낸 뒤 2006년부터 이곳에서 한문을 공부해온 황종국(67)씨의 소감이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나흘을 출석하며 거의 모든 과목을 수강했다. 애초 불교 경전을 읽기 위해 한문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유학과 불교 둘 다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스러워 한다. 수강생끼리 조직한 ‘고전연구회’ 회장도 맡았다. 각계각층의 활동해온 이들과 새로운 교분을 나누는 일은 특별 보너스라며 즐거워 했다.

정년을 마친 ‘젊은 노인’들이 다시 공부하는 동기와 성취감이 다양했다. 공무원 출신의 남정권(64)씨는 어려서부터 한문을 무척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하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야 비로소 그 ‘오랜 꿈’을 이뤘다. “좋은 게 너무 많아요. 죽을 때까지 공부할 생각이에요. 실생활에 쓸려는 게 아닙니다. 인생을 돌아보는 의미에서도 좋아요.”

또 다른 공무원 출신 최선진(66)씨는 “동양고전을 배워보니 내가 너무 고루하고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나 뒤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서형래(62·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씨도 3년 전 멤버가 됐다. 서씨는 “글줄이나 배웠다는 사람이 『논어』『맹자』도 원문으로 읽지 않고 넘어가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에 덤벼들었는데, 쉬운 게 아니며 겸손하게 죽을 때까지 쉬지 말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연호(65·전 국민일보 논설위원)씨 역시 몇 해째 ‘동양학 삼매경’에 푹 빠져 산다고 했다. 곽성문(58) 전 의원을 비롯해, 윤화중(75·전 건국대 농축대학원장)·이명규(75·전 한양대 교수)·이재승(71·전 장안대 교수)·김호태(68·전 대사)·정방우(64·전 금융연수원장)·정규영(64·전 서울외국환중개 사장)·박영식(64·전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 씨 등도 2009년부터 만학 대열에 합류했다.

20년째 이곳에 근무하는 함명숙 사무국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생이 주류였고 가정주부가 그 다음이었는데, 2006년 무렵부터 퇴직 남성 회원이 늘기 시작했다”며 “올 여름학기엔 60세 이상이 50%가 넘었고, 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을 지낸 이가 많다”고 밝혔다. 가을 강좌는 9월 1일 시작된다. 12월 말까지 4개월간 열린다. 인터넷 ‘사이버 서당(cyberseodang.or.kr)도 운영되고 있다. 02-762-8401.

글=배영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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