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EDITOR’S LETTER]후계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1호 02면

1998년 마흔여덟이던 곤도 요시후미가 감독 데뷔작 ‘귀를 기울이면’(1995)만 남겨놓고 급작스레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스튜디오 지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69) 감독의 뒤를 이어 지브리를 이끌 재목으로 기대되던 그였습니다. 미야자키 감독과 다카하다 이사오(75) 감독이 “다른 스태프는 다 데려가도 좋으니 곤도만은 내가 쓰겠다”고 서로 팽팽한 기싸움까지 벌였을 정도로 뛰어난 애니메이터였죠.

그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는 후계자 발굴이 지상과제였습니다. ‘고양이의 보은’(2002)을 만들면서는 지브리 입사 3년 차이던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46)를 전격 발탁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해 일본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요. 지브리의 살림꾼 스즈키 도시오(62) 프로듀서는 다음 타자로 지브리 미술관 관장으로 조용히 살던 미야자키 감독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43)를 불러냈습니다.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어슐러 K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한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2006)을 그에게 맡겼죠. 누구보다 미야자키 감독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가족회의에서 장남의 각오를 듣고 허락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610만 명이 드는 성적을 올렸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9월 9일 국내 개봉하는 ‘마루 밑 아리에티’(그림)에서 기획과 각본을 맡은 미야자키는 감독 자리를 요네바야시 히로마사(37)에게 넘겼습니다. 지브리의 최연소 극장판 애니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은 요네바야시 감독은 15년간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입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하야오의 후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몸을 낮췄지만, 그 평가는 관객이 해주는 것이겠죠. 그는 과연 미야자키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요. 국내외 곳곳에서 ‘후계자’ 얘기가 나오는 요즘, 더 궁금해집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