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시즌곡 … 연아 -오서 커가는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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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피겨 선수들은 보통 시즌 시작 직전 자신의 프로그램 배경음악을 발표한다. 미리 음악을 공개하면 전력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배경음악만 알면 새 프로그램의 분위기나 의상, 안무 구성 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열린 지난 시즌, 김연아(20·고려대)는 배경음악 공개 직전까지 빙상장에 음악을 트는 대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훈련을 했다.

내년 3월, 2010~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는 김연아는 대회를 7개월여 앞두고 배경음악을 숨긴 채 훈련 중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결별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26일(한국시간) 해외 언론을 통해 “김연아의 배경음악은 한국의 여러 노래를 모아 편집한 곡으로 전통음악 ‘아리랑’을 피처링했다”고 공개해 버렸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본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이며 지난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뛰어넘는다. 쇼트 프로그램은 다음 달 초께 캐나다의 아이스 댄서인 셰린 본이 안무를 완성할 것”이라고 밝혀버렸다. 제자였던 김연아의 기밀을 누설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선수의 새 프로그램 발표는 선수 측에서 매니지먼트사와 상의해 직접 하는 게 관례다. 또 오서 코치는 김연아와 함께한 4년여 동안 단 한 번도 김연아의 프로그램을 먼저 공개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곡 발표는 신중하지 못한 게 아니라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서 코치의 도가 넘은 폭로전에 피겨계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오서 코치와 한 팀으로 활동하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은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를 통해 “오서 코치가 프로그램을 언론에 공개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디어와 인터뷰하기 전 프로그램을 공개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무척 놀랍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서울시빙상연맹 이정수 전무 역시 “지금 상황에서 배경음악 발표는 정말 적절하지 않다. 김연아와 좋지 않게 결별한 상황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됐다.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피겨곡 발표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기밀을 누설할 수 있다’는 무언의 협박일 수 있다. 이번 행동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키스앤크라이존’에서 끌어안고 기뻐하는 오서 코치와 김연아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최근 일어나는 일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김연아가 홈피나 트위터 등을 통해 선문답을 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속시원히 전후 사정을 공개하는 게 도리”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김연아 측의 올댓스포츠는 “김연아가 너무 큰 상처를 받고 있어 더 많은 내용을 공개할 생각은 없다. 조속히 일이 마무리됐으면 한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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