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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전범석 교수 “사지 마비 극복한 힘은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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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의 앞날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다. 신경계 손상 환자를 치료하던 의대 신경과 교수가 불의의 사고로 목 부위 척수를 다쳐 동료의사의 손에 맡겨질지 누가 알았으랴. 주인공은 서울대 의대 전범석(52·사진) 교수. 사지가 마비된 채 기저귀를 차고 병상에 누웠던 전 교수가 9개월 만에 재기한 데 이어 6년 만에 의대 신경과학교실 주임교수에까지 올랐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진료과장도 함께 맡은 그는 서울대병원 본원과 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등 3개 병원의 신경과 의사(교수 23명, 전공의 42명) 65명의 인사권 쥐고 해당과의 운영을 맡고 있다. 사지마비와 같은 신경계 질환을 담당하는 신경과의 수장 자리에 이를 겪어보고 재활에 성공한 전 교수가 앉은 것이다. 그를 만나 극복 사연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 당시 상황은.

“2004년 6월5일 후배와 남한산성 정상에 올랐는데 발을 내딛는 찰나 잠깐 정신을 잃으면서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의식은 또렷한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목뼈를 다치면서 척수가 손상된 것이다. 내가 돌보던 사지마비 환자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손상이 내게 닥친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목 부위의 척수가 더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 사람들한테 목을 보호해주도록 요청했고, 들것 대신 헬기를 불러 후송하게 했다. 병원에서 다친 부위를 정리하고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했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새끼 손가락만 까딱할 수 있었을 뿐 사지는 계속 마비 상태였다.”

-당시 심정은.

“암담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문병 온 동료 의사들이 위로하려고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동료도 나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다쳐서는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학 통계만 떠올렸을 뿐이다.”

- 그런데 어떻게 재활에 도전했나.

“의사로서의 자존심에 환자로서의 희망을 보탰다. 통계는 단지 숫자일 뿐, 안 좋은 생각은 배제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고 최선을 다해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투병일지에 그렇게 적게 했다. 그래서 면회를 일절 사절하고 수술 사흘 뒤부터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에 들어갔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집요한 편인가.

“그렇진 않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오로지 재활치료에만 집중했다. 침대에 누워 감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새끼손가락에 물건을 올려놓고 만지고 또 만졌다. 끊어진 신경계 줄 중에서 단 몇 가닥이라도 살아나 다시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재활노력은 차츰 효과를 발휘했다. 3개월 뒤엔 혼자 숟가락을 잡을 수 있었다. 9개월 뒤에는 다시 병원 의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작은 기적이라고 본다.”

-지금 건강 상태는.

“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움직임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럽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지금도 환자들에 섞여 재활·물리 치료를 받는다. 집과 연구실에서도 하루 3시간씩 운동을 한다.”

-주임교수에 오른 소감은.

“신경계 환자들과 가족들이 실생활에서 어떤 문제와 불편을 겪는지, 그 심정은 어떤지 내가 아파보면서 더 잘 알게 됐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였지만 그 덕분에 환자를 더 잘 이해하는 따뜻한 의사가 될 수 있었다.”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이 나아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시기를 권한다. 아무리 의사가 도와주더라도 병을 지고 가는 건 환자 본인이기 때문이다. 투병이든, 인생이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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