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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중국 산책] 한중관계, 물이 불어나야 배가 뜨지 않겠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월 24일로 한중 수교 18주년을 맞았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은 세월도 아닐겁니다.
60년 전 전쟁까지 했던 두 나라가 국교 정상화를 결심한 데는 양측 모두 그만한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시다시피 북방정책의 일환이었지요.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수교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 한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해 남북한 유엔 가입을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참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반면 중국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경제 활력을 흡수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대만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덩샤오핑이 밝힌 것입니다.
수교로 인해 양국 모두 소득이 컸습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의 성과는 눈부십니다. 지난해 한중 교역액은 14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양국을 오가는 인적 교류도 연 500만 명이 넘습니다. 한 주에 800여 편이 넘는 항공기가 양국을 드나들면서 서로 80만 명이 넘는 자국민이 상대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에 유학하는 중국 유학생 수는 올해로 중국에 유학하는 한국 유학생 수를 초과해 7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우리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지난해 19.6%를 기록해 대미 무역의존도 9.7%를 두 배 이상 압도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양국 정부 차원의 관계 발전 또한 꾸준했습니다.
수교 당시 선린우호 협력 관계가 1998년에는 협력적 동반자 관계가 됐고, 2003년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올라섰다가 2008년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습니다.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군사 등 각 방면에서의 협력이라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는 지역 차원의 문제도 논의하고, 특히 시간을 갖고 중장기적 이익을 위해 협력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도 합니다.
양국 관계의 발전은 더 이상의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진 이후 양국은 그동안 보기 어려울 정도의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과연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양국 간 마찰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00년엔 마늘 분쟁으로 일컬어지는 무역 분규가 있었습니다. 2002년의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는 한국의 4강 진출 선전에 일부 중국 언론이 깎아내리는 보도를 해 잠시 서먹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2004년엔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면서 한국이 분노했고, 반대로 중국에서는 우리의 강릉단오제가 중국 문화에 대한 침탈로 오해되며 중국 네티즌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누적된 양국 국민 간의 감정의 앙금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 관중이 우리의 상대팀을 응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런 문제들은 양국 정부와 국민의 발 빠른 대처로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촉발된 한중 간 대립은 '중국은 한국에 무엇인가‘ ’한국은 중국에 무엇인가‘와 같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서로의 민감한 핵심 이익과 결부되는 문제에 부딪치자 한 치 없는 대결 국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의 무조건식 북한 감싸기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우리의 운명조차 결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무력감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반면 중국은 점정 공고화되는 한미 전략동맹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미 연합훈련을 ’망령된(妄)‘ 것이라는 거친 용어로 표현할 정도로 조급증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침내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의 협력 증진을 통해 쌓아 온 한중 양국간의 신뢰가 첨예한 안보 문제와 맞닥뜨리자 그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중 양국은 이제 그동안 상호관계 발전이라는 큰 대의를 위해 말하기 껄끄러웠던 사안들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동북공정의 역사문제나 이어도의 영토문제, 북한정권의 존립과 직결된 한반도의 통일문제 등을 더 이상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이름하에 옆으로 치워놓고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도 성의와 인내를 갖고 솔직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름만 걸어놓았을 뿐 내용이 없다는 핀잔을 듣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알맹이를 채우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이 불어나야 배가 높이 뜬다(水漲船高)고 합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늘어나야 한중 관계가 한 단계 더 질적인 발전을 이룰 것입니다. 마침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에 따라 이제까지 두 차례 정도 열린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를 그런 무대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중 양국이 상생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대담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그게 말뿐이 아닌 내용 있는 진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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