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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이 임금 될 확률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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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통계적·역사적으로 보면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 같다. 중국 고대에 제왕이 임명한 승상(丞相)은 주변의 모함과 제왕의 변덕에 따라 파리 목숨 같은 처지였을 뿐이다. 승상을 거쳐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은 추후 위왕(魏王)이 된 조조(曹操) 정도가 명료할 뿐이다. 조선시대의 가장 막강한 2인자로 건국의 토대를 닦았던 태조 때 재상 정도전 역시 왕권 싸움에 휘말리면서 차기 권력 이방원에 의한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44대 버락 오바마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43명. 이 중 제도의 2인자인 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다음 대통령에 당선된 이는 4명(조지 H. W. 부시, 마틴 밴 뷰런,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정도다. 린든 B. 존슨은 부통령으로 재직 중 케네디 대통령의 피살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뒤 다음 선거에서 재선됐다. 리처드 M. 닉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으나 직후 60년 대선에선 존 F. 케네디에게 패했다. 8년 뒤 대선에서 당선되긴 했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실패작이 부통령제”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통령에게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다’란 걸 일러주는 일”이란 얘기를 들었던 게 부통령의 위상이었다.

대한민국? 정승이 임금 된 확률은 ‘0’이다. 건국 이래 정운찬 총리까지 40명의 총리 중 대통령에 선출된 사람은 없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총리를 지내다 정변 뒤 과도기 대통령을 떠맡아야 했을 뿐이다. 세력 기반이 취약한 이북 출신 총리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대통령이 총리를 대하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1인자로부터 임명받은 2인자가 스스로 1인자로 등극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역사다. 그럼 1인자가 되려면. 지난한 세 가지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자신만의 이미지, 업적을 낼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극히 모순(矛盾)이지만 동시에 1인자와의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

임명된 ‘제도의 2인자’란 1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의) 스페어 타이어’로 평가절하당하기 일쑤다. 우리 총리도 대통령의 연설이나 대독하는 ‘짝퉁’이거나 ‘바람막이’로 치부됐다. 역대 총리 중 그나마 신선한 이미지로 부상한 경우는 김영삼(YS)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이회창 총리 정도였다. 이해찬 총리는 ‘일 잘하는 실세 총리’로 순항했으나 그 성정(性情)과 구설(口舌)에서 ‘짝퉁 노무현’을 탈피하지 못했다. 보수정권의 정운찬 총리는 ‘진보적 이미지’라는 상품성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총리’로 자리매김되며 낙마했다.

고도의 정치감각, 정책, 용인술 등의 실력은 1인자 등극의 필수조건이다. 간웅(奸雄)으로만 알려진 조조는 승상 시절 ‘둔전제(屯田制)’와 ‘병호제(兵戶制)’를 확립해 경제와 국방을 강화했던 정책의 달인이었다. 존슨도 미 대통령 승계 직후 가난과 인종차별을 없애려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정책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존슨과 닉슨은 미 대통령 중 포섭, 회유, 팔 비틀기의 정치력이 가장 뛰어났던 ‘정치 9단’으로도 꼽힌 다. 널리 인재를 청해 최강의 참모진을 구축하는 용인술 역시 1인자의 공통 자질이다. 오죽하면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 사람이던 딕 체니, 콘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등을 그대로 상속받았던가.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한 당선 요인도 호남 위원장 12명을 끌어온 김덕룡 전 의원을 잡은 때문이라 하지 않는가.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참신한 이미지. 실력으로 자신만의 업적을 내면서도 대통령의 역린(逆鱗·용의 턱 아래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기란…. 총리로선 참 난해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1997년 YS와 이회창의 관계, 이인제의 출마 등에서 보듯 ‘대통령이 대통령 되게는 못해도 못 되게는 할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의 현실이었다. 정승이 임금 될 확률은 결국 이런 ‘인간 삼박자’에 천운(天運)까지 따라줘야 하는 기적의 수치인 듯싶다. 그나저나 시작부터 생채기를 많이 얻은 김태호 후보자의 앞날이 더 궁금해진다.

최훈 토요섹션 j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