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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8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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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그러고는 전주였다. 전주에는 광길이네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어서 그 집에서 잤다. 우리는 이듬해 겨울방학 때에 다시 한번 광길이네 시골 집에 내려가면서 그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광길이의 사촌 형님이 군대에서 막 제대해 있었는데 고등학교 적에 여고생을 꾀던 무용담을 어찌나 장광설로 떠들어대는지 우리는 넋을 빼고 들었다. 고저장단에 얹힌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대단한 입담이었다고 기억한다. 나중에 광길이 장례식에서 보았는데 어느 틈에 이마에 주름이 조글조글한 힘빠진 시골 농부로 변해 있었다. 전주역에서 가끔씩 들고나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어찌나 처량하든지 잠들지 못하고 벽을 향하여 멀뚱히 눈뜨고 누워 있었다. 김빠지는 소리와 피스톤이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 그것은 너무도 낯익어서 날이 밝으면 여의도 비행장의 프로펠러 소리까지 들려올 것만 같았다.

광길이와 나는 남원에 들러서 성진이를 일행에 넣기로 했다. 광길이가 미리 엽서를 보내어 우리가 간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에 성진이는 그야말로 시골 할머니 집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수채화 물감과 크고 작은 스케치북을 달랑 챙겨 가지고 우리를 따라나섰다. 나는 어딘지 답답하고 고지식한 광길이와 다니다가 펄펄 뛰는 그림쟁이 성진이를 만나자 갑자기 온 세상이 단조로운 흑백에서 어지러운 원색으로 변한 듯한 느낌이었다. 광길이네 시골 순창에는 방학 중에 본가를 찾은 사촌 형제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광길이네 아버지가 그 집 큰아들이었는데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난 뒤 전쟁 전후에 다시는 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훨씬 뒤에도 직업을 갖지 않은 채 가난한 아내의 뒷바라지에 기대어 세상 출입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혹시 역사적 상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왜냐 하면 지금도 그 댁에서 본 이상한 둘째아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는 도사처럼 수염과 머리를 길게 기르고 한복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자기 아버지처럼 일본서 공부했다는데 광길이 말에 의하면 '머리가 너무 좋아서 돌았다'고 한다. 밤에 나타나면 정신이 온전한 그의 착한 아내나 형수가 밥을 챙겨 주었고 다시 나가서는 아무 데서나 잠들었다. 그는 전쟁 때에 산사람이었다고도 하며 그를 살리려고 재산을 많이 없앴다고도 한다. 우리에게 다가와 갑자기 볼과 머리를 쓰다듬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광길이 할아버지, 그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이다. 이 사람이 수십여 명 식구의 가장이었다. 언제나 바깥 사랑채의 구석진 방에 앉아서 낡은 한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우리에게 이것 저것 바깥 세상의 일을 물었고 내가 쓴 단편소설을 읽어 달라고 해서 광길이와 함께 앉아서 호롱불 밑에서 읽었다. 그는 끝까지 듣고 나서 좋은 글이란 '쉽고 간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식객들 중에 머리통이 큰 우리 셋은 집에 있는 투망을 가지고 섬진강의 상류인 너른 개천으로 나아갔다. 물이 대개는 무릎 높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깊은 곳은 한 길이 넘는 곳이 많았다. 우리 중에 광길이만 투망을 던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여름방학에 이곳에 올 때마다 한두번 해본 솜씨에 지나지 않았다. 광길이가 몇 번이나 시도하자 곧 눈설미 빠른 성진이가 달라고 하더니 대번에 허공에 큰 원을 만들어 멀찍이 던지는 것이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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