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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도요타·BP·골드먼삭스에서 배우는 ‘실패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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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위기에 빠진 기업의 현실은 혼돈 그 자체다. 기업이라기보다는 공황 상태에서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홍보 전략을 맡았던 에릭 데즌홀의 말이다. 일류 기업들조차 한 번 위기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도요타자동차·BP·골드먼삭스도 마찬가지였다. 위기의 발단은 달랐지만 이후 잇따른 자충수를 두면서 애써 쌓아 올린 브랜드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했다는 건 공통적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이들 기업의 위기관리 사례를 통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복기했다. 이른바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잘못을 신속히 인정하라”=세 기업 모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BP가 대표적이다. 멕시코만 심해에서 원유 유출사고가 터지자 BP는 기름 유출량이 하루 1000배럴 규모라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에 6만 배럴 가까운 기름이 새어 나오고, 총유출량은 500만 배럴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거센 비난이 일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하청업체들과 책임 떠넘기기를 벌이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뉴욕 양키스 야구팀의 대변인이자 홍보업계 유명 인사인 하워드 루벤스타인은 “56년간 업계에 몸담으면서 본 최악의 홍보 사례”라고 평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도요타는 미국인들에게 성실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이런 이미지를 잘 살렸다면 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넘길 수 있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다른 길을 갔다. 지난해 9월 바닥 매트에 가속페달이 눌려 급가속이 되는 결함이 나타나자 도요타는 380만 대의 차량에 대해 리콜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도요타 측은 “매트만 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란이 지속되자 이후 추가 리콜을 실시했다.

월가의 상징이던 골드먼삭스도 올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피소되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시종일관 공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더 해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릴린치 전 부회장인 에디 리브스는 “사람들은 기업도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면 용서한다”며 “하지만 거짓으로 이를 덮으려 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CEO가 사태 키우기도=흔히 위기 상황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통 능력이 부족한 CEO는 자칫 사태를 더 키울 수 있다. BP의 토니 헤이워드 전 CEO가 그랬다. 사건 초기 오염 범위를 놓고 한창 논란이 벌어질 때 그는 “멕시코만은 매우 넓다. 유출된 기름도 이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에도 미 청문회장에서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어색한 영어 발음이 대중에게 ‘소통하기 힘든 기업’이라는 인상을 줬다는 지적이다.

위기 때 CEO의 ‘말실수’가 잦은 것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기업 내 문화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CEO의 경우 사내에서 항상 존중받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매력이나 힘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회 청문회나 기자회견에서 청중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 직원이 아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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