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인권운동가 故 마쓰이]일본군 위안부 문제 규명 앞장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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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쓰이 야요리(松井依)나와라!가만두지 않겠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이 열렸던 지난 2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구 구단회관앞.일본 우익세력 수백명이 회관 건물을 맴돌며 이 법정을 처음 제안하고 이끌었던 마쓰이 야요리에 대한 협박을 공공연히 해대고 있었다. 아시아 여성인권 운동의 전사(戰士)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규명 운동의 선봉장이었던 마쓰이 야요리가 지난 27일 일본에서 타계했다. 68세.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일본 네트워크' 대표인 그는 도쿄법정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등 전쟁 범죄를 여성의 손으로 단죄해 일본 정부 및 국왕에 대한 민간 법정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고인은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선 '일본의 살아 있는 지성이자 양심'으로 존경받았다. 하지만 국수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한 일본에서는 도쿄 법정 이후 한달 넘게 은신해야 할 정도로 테러위협에 시달려 왔다.

그는 1971년 이화여대생들이 일본인의 기생관광 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고 충격받아 한국의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아사히(朝日)신문 사회부기자였던 마쓰이는 이후 한국·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의 성매매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94년 남북한 및 일본 여성의 연대 모임에서 기자와 만났던 그는 "20여년간 아시아 여성의 인권문제 해결에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실천했다.

지난 10월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성폭력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다 말기 간암 증세로 쓰러졌던 그는 타계 전까지 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전시할 자료관 설립을 추진해 왔다. 그는 자신의 집과 저금 등을 설립 비용으로 내놓겠다고 해 한국 여성들에게 진한 자매애를 남기고 갔다.

도쿄 법정에 함께 참여했던 박원순(朴元淳)변호사는 "깐깐하면서도 열정적인 그의 행동력에 감동받곤 했다"며 애도했다. 신혜수(申蕙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국제협력위원장은 "아시아 여성인권운동의 기둥이 무너진 느낌"이라며 가슴 아파했다.

문경란 기자

moonk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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