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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58) 겨울을 앞둔 빨치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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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 전투에 투입될 유격대원을 양성, 남쪽으로 보냈다. 사진은 남파 유격대원들을 격려하는 평양의 시가행진 모습. [중앙포토]

오대산 지구에는 제1병단이 자리를 잡았고, 태백산 지구에는 제3병단이 들어섰다. 지리산 지구는 이현상을 사령관으로 하는 제2병단의 근거지였다. 이현상의 2병단이 가장 세(勢)가 두터웠고 활동 역시 눈에 띄었다.

내가 상대해야 했던 부대는 이현상의 2병단이었다. 이들은 예하에 4개 연대를 두고 지역을 나눠서 활동하고 있었다. 연대라고 했지만 실제 병력 수가 일반 연대급에 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어엿한 규모를 갖춘 게릴라 부대였다.

이들은 닥쳐올 가을에 대비해 대대적인 초모(招募: 군사조직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일)사업을 벌였다. 남한의 청년들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 모으려 했던 것이다. 그해 7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초모 활동은 극성을 부려 경북에서만 451명이 입산했고, 전남에서도 빨치산에 들어간 청년이 334명에 달했다.

우리 쪽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빨치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북을 나눠서 북쪽으로는 지리산지구 전투사령부, 남쪽으로는 호남지구 전투사령부가 49년 3월 출범했다. 광주의 5사단은 호남지구 전투사령부를 맡았다. 점차 복잡해지는 빨치산의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획을 정밀하게 나눈 다음 토벌에 나서는 게 바람직했다. 호남지구에서 전력을 기울여 토벌에 나서는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당시 지리산 지역에서는 빨치산들이 총기를 수리하고 사제(私製) 수류탄까지 제조하는 무기공장도 만들어 운영했다. 자신들이 ‘해방구’라고 부르는 점령 지역에서는 등사판을 이용해 신문과 유인물을 제작해 주변 마을에 뿌리는 행위도 버젓이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빨치산의 활동에 이상한 조짐이 나타났다. 뭔가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초모사업을 통해 병력을 과도하게 불리고, 그만큼 늘어나는 부대원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 마을에서 식량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자신의 전략적인 방어 지역에서 배제하면서 발을 빼기 시작했던 당시의 국제 정치적 흐름과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빨치산이 과도한 축적(蓄積)을 행하면서 무리수를 둔다는 점이 우리 일선 정보팀에 포착됐다. 그동안 5사단은 꾸준하게 대민 선무(宣撫:점령지나 군 작전지역의 주민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행하는 선전과 지원 활동) 공작을 벌였다. 당장 효과는 없었지만 가능한 한 민폐(民弊)를 줄이면서 무리한 작전을 펼치지 않아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빨치산들은 닥치는 대로 식량과 의복을 주민에게서 빼앗아 갔다. 더구나 추수기가 다가오면서 식량을 둘러싼 빨치산과 주민들의 갈등은 점차 깊어만 갔다. 빨치산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식량을 가져가면서 ‘적화통일이 이뤄진 다음에 갚아 준다’는 내용의 차용증서를 써주기도 했다. 그러나 토벌대의 압박이 심해져 바짝 쫓기는 상황에 빠진 뒤에는 무조건적인 약탈이 자주 발생했다.

인근 마을의 지주와 우익 인사들은 빨치산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진 7월 이후 대부분 면 소재지 이상의 큰 주거지로 거처를 옮겼다. 소농과 빈농들도 토벌대의 작전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역시 피란길에 올랐다. 빨치산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비상시에 구할 식량이 없어진다는 얘기였다.

민심도 빨치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하나 둘씩 제보(提報)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단 정보참모로 온 김용주 소령은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일본군 헌병 출신인 그는 정보를 아주 잘 관리했다. 산간 마을과 중산간 마을 등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그는 빨치산의 이동 경로를 매일 그려 나갔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빨치산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까지 짚어냈다.

각급 부대의 전투력도 크게 높아져 있었다. 이들은 새로 지급받았던 미군의 M1 소총의 가늠자도 잘 다룰 줄 몰랐다가,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하나같이 노련한 사격수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매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정한 매복 지점에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해 적을 기다릴 줄 알게 됐다. 적을 앞에 두고서도 넋을 잃고 잠에 빠지던 군대가 명령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시간을 준수하면서 적진(敵陣) 앞에 매복하는 유능한 군대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현상(1905~53)

점차 차가워지는 날씨 속에 지리산을 비롯한 인근 산악 지역이 두터운 여름의 옷을 벗어버리면서 빨치산들은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시야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민들의 제보도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어왔다. 겨울의 혹한기를 예상해 빨치산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우리는 보다 신중하게 작전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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