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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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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원제 The Oxford History ofWorld Cinema
제프리 노엘-스미스 책임편집, 김경식 외 옮김
열린책들, 1000쪽, 5만9000원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70년에 걸쳐 1000여명의 학자가 참여해 1928년 완성한 이 사전은 수록된 어휘만 40만이 넘는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바로 영화사(史)의 옥스퍼드 사전이기를 갈망하는 것 같다. 두툼한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영화 전문가 80여명이 필진으로 참여했고, 이들이 참고한 저서가 800 권에 이른다. 서술 방식도 '사전'처럼 최대한 객관적이다.

책임 편집자인 노엘-스미스는 필자들에게 팩트(사실) 위주로 써 달라고 부탁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80명이 제각각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불협화음으로 독자들이 미로에 빠질 터이다. 그래서 책은 중립적인 논조를 견지하는 신문 기사를 읽는 느낌을 준다. 페미니즘.마르크시즘.정신분석학.기호론 등 영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틀들은 배제돼 있다.

예컨대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다룬 곳을 보자. "1947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터 유니버스와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거머쥐고…'토탈리콜'과 '터미네이터2'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으며…'마지막 액션 히어로'의 실패로 할리우드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식이다. 연구자들이 흔히 하듯이, 슈워제네거라는 근육질 배우가 표상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의미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1996년에 나온 이 책은 영화 탄생 100년을 회고하는 것으로 약 30년 단위로 '무성영화(1895-1930)' '유성영화(1930-1960)' '현대영화(1960-1995)'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각 장마다 영화를 둘러싼 사회.역사적 환경, 해당 시기를 주도한 장르, 각국의 영화를 살펴본다. 아쉽지만 100년의 영화 역사에 한국영화는 등재돼 있지 않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대만.홍콩.인도네시아까지 다뤄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95년 이후 한국영화의 양적. 질적 성장을 감안한다면 개정판이 나올 때는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들면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다. 8명의 역자가 붙었고 색인도 훌륭하다. 박스 형태를 한 하드커버 디자인도 세련됐다. 단지 힘들여 한국말로 옮긴 번역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번역 후기가 없어 허전하다.

이영기(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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