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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가 “노”하면 사업 올스톱 … 업체들 죽기살기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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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월 제주지방법원은 골프장의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용역업체들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평가위원인 제주대 이모(50) 교수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던 제주도 내 한 골프장 대표 J씨(48)는 “환경영향평가가 골프장 사업승인을 판가름하다 보니 골프장 업체로서는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들을 어떻게든 매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통상 골프장 업체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땅부터 산다. 사업이 결정되면 회원권을 분양해 마련한 돈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지만, 결정이 늦어지면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한다. 그는 “심의위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퇴짜를 놓아 사업이 연기되지 않도록 향응 접대는 물론이고 뇌물성 용역을 주며 심의위원을 아군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야당리 638번지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조성 예정부지. 심의위원회 관련 비리 사건으로 착공도 못한 채 방치돼 있다. [강정현 기자]

2만여 개에 달하는 지자체의 위원회는 그 성격에 따라 의결·심의·자문 위원회 등으로 나뉜다. 이 중 각종 비리사건이 발생하는 곳은 도시계획위원회, 턴키심의위원회, 환경영향평가위원회 등 굵직한 사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심의위원회다. 공사업체들이 심의위원을 상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치열한 로비를 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원회의 막강한 권한을 제재할 장치는 부족하다. 지방자치법상 공무원과 위촉직 민간위원으로 만드는 위원회의 구성과 다수결로 안을 결정하는 심의·의결 방식에 대해서만 명시되어 있다. 안건 처리기간이나 심의 내용의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지방행정연구원의 금창호 행정학 박사는 “심의위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심의를 미루거나 법적 근거가 없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도 이를 통제할 운영 규정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원회의 권한 남용으로 인한 업체들의 피해는 크다. 한 지자체의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해 도시개발 사업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한 시행사에 공사 면적의 40%를 공원·도로 등 공공시설로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법에도 없는 기준이었다. 업체들이 반발하자 심의는 6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아파트를 지으려던 한 시행사는 토지 매입을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의 하루 이자 8000만원을 갚지 못해 당시 파산 직전까지 갔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법규상 건물을 10층까지 지을 수 있어도 심의위원들이 답답하다며 두 개 층을 날려버리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년간 건축 인허가 현장에서 있으면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를 안 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각종 위원회의 기준 없는 결정이 그들에게 이해가 안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원회와 지자체 공무원이 결탁해 심의 내용을 입맛대로 몰아가는 일도 많다. 통상 지자체장에게 민간위원의 위촉권이 있다 보니 공무원들이 이를 악용해 미리 심의 내용을 결정한 뒤 위원회를 이용해 명분 쌓기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남의 한 대학교수는 “공무원들이 위원회 소집을 통보하면서 위원에게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든가 ‘어느 업체를 좀 도와줘라’고 주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특정 위원이 위원회마다 중복으로 위촉돼 심의 결과의 ‘공정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특히 지방의 경우 전문가 인력 풀이 부족하다 보니 대학교수들이 다수의 심의 위원회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효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실태조사를 해본 결과 민간위원 한 명이 4~15개의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 여러 개의 위원회에 중복 참석하면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결정의 공정성이 떨어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양성철·한은화 기자, [전국종합]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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