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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잘하는 노래 vs 못하는 노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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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05면

이 노래는 들려드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글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을 테니까요. 하지만 음반을 구입하진 마세요. 후회와 원망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노래를 못했던 소프라노,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참입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속에 불타오른다’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버전으로 유명하죠. 피아노 건반 중앙에 있는 ‘도(C)’음보다 두 옥타브 높은 ‘하이 C’, 거기에서 4도 위의 ‘파(F)’음 즉 ‘하이 F’까지 소화해야 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젠킨스는 첫 마디부터 시원하게 망치기 시작합니다. 겨우 한 옥타브 올라갔을 뿐인데 말이죠. 악보보다 두세 음 낮춰 부르는 것은 예사, 피아노 반주는 나 몰라라 자신의 길을 갑니다. 아무리 옛날 녹음이라지만 발음 또한 모음ㆍ자음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아리아가 담겨 있는 앨범의 제목은 ‘하이 C 살인’입니다. 높은 음에서 누가 죽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담은 좋은 제목이죠. 이 앨범은 젠킨스의 마지막 음반이랍니다. 그 전에도 두 장을 더 내놨습니다.

끔찍하게 못 하지만, 젠킨스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알았죠. 무섭게 반대했습니다. 양친이 모두 돌아가신 후 젠킨스는 노래에 전념합니다.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 연회장에서 매년 독창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대의 쟁쟁한 소프라노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도 질투라고 여겼죠. 노래하러 나올 때면 등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머리에 꽃을 얹었습니다. 곧 뉴욕의 명물로 떠올라 입소문을 탔습니다. 1944년 사망 두 달 전에는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었는데 몇 주 전에 표가 매진됐다고 합니다.

음반도 많이 팔렸습니다. LP 앨범은 최근 10여 년 동안 CD로 다시 나왔습니다. 1~2년 전까지도 미국의 인디 밴드와 연극계는 그녀의 생애를 주제로 음악ㆍ연극 작품을 내놓았고요.

세상에는 경이롭게 잘하는 연주자ㆍ성악가가 많습니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반 위에서 펄펄 뛰어다니는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도 “나 같은 사람이 중국에 1000명 더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소프라노가 소화하는 고음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밤의 여왕 아리아를 잘 부르는 소프라노도 한둘이 아닙니다. 감동의 역치가 점점 높아진다고나 할까요. 예전처럼 감동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듣는 사람이 그 연주를 좋아하느냐의 여부에 있지 않을까요. 젠킨스는 음악에 대한 특유의 집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하나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조금 틀리고, 뒤뚱거리거나 망쳐버릴지라도 어딘지 듣는 이의 마음에 들고 ‘팬심’이 생기도록 한다면 좋은 연주 아닐까요. ‘잘하나 못하나’보다 ‘좋은지 안 좋은지’가 중요한 게 음악입니다.

A 듣는 사람 취향따라 판단 달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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