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Special] 한국 드라마 ‘도망자’에 나올 일본 국민배우 다케나카 나오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도쿄=박소영 특파원

#최민식·송강호·설경구를 제일 좋아해

● 한국 드라마 출연은 처음인지.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도쿄!’라는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도쿄 오쿠보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열차에 치어 숨진 의인 이수현씨 이야기를 그린 영화 ‘당신을 잊지 않을 거야’라는 작품에도 참여했습니다. 한국 관련 작품은 벌써 세 번째네요.”

● 출연하게 된 계기는. 히로키라는 배역이 마음에 들어서 출연한 건가(’도망자’에서 그는 낮에는 일본 정·재계의 유력자로, 밤에는 야쿠자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감독님(곽정환)의 러브콜로 성사됐습니다. 배우란 감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인 내가 배역을 고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나를 불러준 것은 내가 그 배역에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감독의 바람과 나의 연기가 하나가 될 때 극의 인물이 완성됩니다. 언제나 배우가 원하는 역할만 맡을 수는 없죠.”

● 촬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다면.

“촬영 기간 내내 아주 즐거웠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촬영 내내 개방적인 분위기인 게 매우 좋았습니다. 일본은 본 촬영 전에 여러 차례 테스트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연기를 해본 뒤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버전으로 촬영을 하는데, 한국은 곧바로 본 촬영을 하더군요. 그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긴장과 집중력을 더 요구했습니다.”

● 좋아하는 한국 영화, 한국 배우가 있나.

“한국 배우들은 왜 그렇게 큽니까.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에 함께 출연하는 레인(비)을 비롯해 내가 아는 한국 배우들은 하나같이 키가 커 놀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나쁜남자’ ‘활’ 등. 대중적인 작품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쁜 남자’를 보면서 정말이지 소름이 돋더라고요. 김기덕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도 즐겨 봅니다. 배우 중엔 최민식·송강호·설경구씨를 좋아합니다.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똥파리’. 최근에 본 영화 중엔 송강호씨가 신부로 출연하는 ‘박쥐’가 걸작이었습니다. 최민식씨와는 전주영화제에서 대담한 적이 있는데, 스케일이 큰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일본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한류 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작품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진한 피,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분노, 슬픔을 그대로 스크린에 녹여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아시스’도 그렇고, 몸 속의 에너지가 철철 뿜어져 나오는 파워가 있습니다. 영혼이 스크린에 묻어난다고나 할까요.”

● 그간 한국에 소개된 다케나카는 코믹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번 작품은 다소 무거운 이미지 아닌지.

“나는 대본을 읽고 나서 출연 여부를 결정하는 걸 싫어합니다. 작은 배역이더라도 최대한 재미있게, 의미 있는 배역으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작품 속 다양한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나 ‘쉘 위 댄스’에서는 분장을 하거나 가발을 쓰는 극단적인 면이 있었지만, 감독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하고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기는 진지한 배역이나 코믹배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은 배우가 어디까지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 배역이나 대본을 보고 출연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작품도 있나.

“실패, 성공은 가치관의 차이 아닙니까. 감독이 결과에 만족하면 되는 거죠. 내가 결과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성공이라는게 작품이 흥행해 돈을 버는 것일수도 있지만, 결국은 애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간절한 기대와 바람이 모아져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각본 없는 게 인생이라 대본 안 읽고 촬영

● 촬영장에 가기 전까지는 대본을 미리 읽지 않는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는 각본 없는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배우가 대본을 읽고 역할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오만한 것 아닌가요. ‘이런 줄거리구나’ 하고 촬영에 임하는 게 싫습니다. 배우는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나를 찍어주는 카메라맨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조명 팀이 생각하는 그 장면의 분위기가 어떤 건지 등 현장의 모든 에너지를 느끼면서 연기해야 합니다. 전 현장 분위기와 배우의 직감·순발력으로 기대 이상의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다케나카에게 영화·드라마·배우란 무엇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배우란 직업을 동경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연기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꿈을 꾸는 일이죠. 학창시절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였습니다. 매사에 금방 지치고 좌절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는데,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다 보니 양쪽에 뛰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겁니다. ‘이러다 내가 결승테이프를 끊고 주목을 받겠구나’ 싶으니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거예요. 그래서 결승테이프 직전에서 뒤돌아 거꾸로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성격란에 ‘소극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자신감도 없고, 사람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교시절 우연히 선생님 흉내를 내봤어요. 의외로 반응이 좋은 겁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무서움이나 불안감도 없어지더군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의 배우 생활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영화 ‘쉘 위 댄스’에서 무능한 샐러리맨 아오키가 화장실에서나 사무실에서 절도 있는 춤 동작 걸음걸이를 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촬영 중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배우는 처음”이라고 했다던데.

“두 달간 다른 영화 촬영으로 산타페에 다녀왔더니 그간 연습한 다른 배우들은 완벽한 춤 실력을 갖췄더군요. 나는 스텝이고 뭐고 전혀 연습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일주일 정도 집중적으로 연습해 스텝은 어느 정도 익혔는데,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그때 수오 감독이 ‘기본적인 스텝 연습은 됐다’며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건네줬습니다. 라틴 댄스의 전설인 도니 번스의 비디오였습니다. ‘쉘 위 댄스’의 아오키의 이미지는 도니 번스입니다. 그의 스타일대로 가발을 썼더니 의외로 잘 어울리더군요. 극중 춤을 추는 동안 나는 다케나카가 아닌 도니 번스였습니다.”

● 올해 개봉한 영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슈트레제만 분장도 특정인물을 모델로 한 건가.

“아니요. 오랜 친분이 있는 특수 메이크업 전문가 에가와 에쓰코씨와 함께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평소 원작을 안 읽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한 이미지대로 분장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만들어졌더군요. 외국인이라는 가공의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분장이었죠. 장발에 코를 만들어 붙였는데, 촬영 내내 콧물이 나와도 코를 풀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노다메 칸타빌레’의 추억이 있다면.

“프라하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일입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서려 있는 프라하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한 것은 정말이지 꿈 같은 한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연기한 우에노 주리는 여배우로서의 파워가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다마키 히로시는 인물은 물론 분위기 그 자체가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 100편이 넘는 작품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는데…. 마음에 새기고 있는 몇몇 감독의 말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주로 과장된, 텐션(긴장)이 높은 배역을 맡다 보니 연기를 하다가도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쉘 위 댄스’ 촬영 때도 ‘감독님, 이거 너무 오버한 거 아닐까요?’하고 물었더니 수오 감독이 ‘다케나카 나오토에게 오버란 없다’는 말을 해주더군요. 감독의 그런 말 한마디가 배우에겐 커다란 에너지원이 됩니다. 신인 시절 모리사키 아즈마 감독과 ‘로케이션’이라는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항상 내 코믹 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모리사키 감독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죠. 본 촬영 때는 연습 때와 다른, 코믹 연기를 애드리브로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즉각 ‘컷’ 사인이 날아왔습니다. 모리사키 감독은 무서운 표정으로 ‘쓸데없는 연기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네 연기를 하라’고 꾸중을 했습니다. 감동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네 모습 그대로를 연기하라니…. 얼마나 나를 잘 알고 배려한 말입니까.“

● 직접 감독과 배우로 출연한 영화 ‘도쿄맑음’을 비롯해 지금까지 6개 작품을 제작했다. 감독과 배우의 세계는 전혀 다른가. 영화음악도 직접 담당하던데.

“감독을 할 때는 각본에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저는 영화의 99%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그리는 작품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배우가 얼마만큼 자유롭게 촬영에 임하느냐에 달린 거죠. 내가 감독할 때는 배우들에게도 대본을 외우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배우가 대본을 외우는 과정에서 극중 인물을 설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촬영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인물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음악 제작도 직접 합니다. 9월에 나오는 일본밴드 ‘피시맨’의 음반 작업을 함께 합니다. 제가 노래를 부릅니다.”

다케나카 나오토는

1956년 3월 요코하마 출생. 다마 미대 졸업. 대학시절 극단 청년좌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83년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입문해 96년 NHK 대하드라마 ‘히데요시’의 주연으로 국민적 배우로 발돋움했다. 91년 첫 감독작인 ‘무능한 사람’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국제영화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도쿄맑음’ 등 6개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쉘 위 댄스’(96년),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2009년) 등에 출연했다. 오른쪽 사진은 ‘도망자’의 한 장면.



j 칵테일 >> 기자를 앉혀놓고 ‘다케나카 원맨쇼’

영화 ‘으랏 차 차 스모부’(2000년)

다케나카 나오토와 만난 한 시간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 ‘쉘 위 댄스’ 이야기가 나오면 극중 아오키처럼 고개를 절도 있게 돌려준다. 어라라… ‘노다메 칸타빌레’ 이야기를 꺼내자 느닷없이 “노다뭬짱! 고콘 시마쇼(미팅합시다)!”를 외친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그가 맡은 변태 지휘자 슈트레제만의 가장 유명한 대사다. 나더러 노다메의 대사라도 외우란 말인가…. 어찌할 줄 모르는 기자를 코앞에 앉혀 놓고 그의 원맨쇼는 그렇게 계속됐다.

어릴 적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다던 그가 영화배우가 된 것은 어쩌면 부모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형제가 없던 다케나카는 학교가 끝나면 늘 혼자였다. 요코하마 시청 공무원이던 그의 부모는 유명한 영화광이었다. 토요일엔 퇴근 후 어김없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찾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다케나카가 처음 본 영화가 피에트로 제르미의 ‘철도원’이다. 그 다음은 007 시리즈였다. 또래 친구들이 만화영화에 열광하던 시절, 다케나카는 007에 나오는 본드걸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생에게는 제법 자극적인 영화였는데,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슬쩍 내 눈을 가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 근처에 있는 나오키 산주고(극작가이자 연출가)의 묘에 종종 아들 나오토를 데려갔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가난은 길고 예술은 짧다”는 묘비의 글을 읽어주곤 했다. 다케나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8㎜ 영화를 찍었고, 대학생이던 1978년엔 극단 ‘청년좌’에 들어가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TV 드라마와 라디오 프로그램, 영화 외에도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자신의 모교인 다마 미대 그래픽디자인학과의 객원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