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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盧대통령 연호 … "지옥 갔다 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9일 오후 8시45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는 환호로 뒤덮였다. TV를 통해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당직자들은 간발의 차이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뒤쫓던 노무현(盧武鉉)후보가 역전에 성공하자 박수를 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당사 앞에는 태극기와 노란 풍선을 둔 지지자들과 노사모 회원 2백여명이 몰려들어 분위기를 돋궜다.

표 차이가 20만표를 넘어서며 방송사들이 盧당선자의 당선 유력을 보도한 오후 9시35분쯤 다시 한번 환성이 일었다. 정대철(鄭大哲)선대위원장은 오후 10시쯤 盧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뒤 "지옥에 갔다 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해찬(李海瓚)기획본부장은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첫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정몽준(鄭夢準)대표의 지지 철회라는 충격파를 국민들이 하루 만에 소화해 냈다"며 "40만표 정도의 승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盧당선자가 '차기 주자'로 거론하는 바람에 난처한 입장에 빠졌던 추미애(秋美愛)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盧당선자의 발언은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면서 활짝 웃었다.

4층 상황실에서 TV를 지켜보던 한화갑(韓和甲)대표와 鄭선대위원장 등도 개표 초반의 열세가 우세로 바뀌며 굳어지자 승리를 자신했다. 이 시간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내일 오전 8시 30분에 국립묘지를 참배할 것"이라며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맥주와 샴페인을 미리 터뜨리기도 했다. 당사에는 당선 소감을 밝히기 위해 들를 盧당선자를 경호하기 위해 경찰 경호팀이 파견됐다.

오후 10시 22분 시내 모처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았던 盧당선자와 부인 권양숙(權良淑)여사가 민주당사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5백여명으로 늘어난 지지자들과 노사모 회원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노무현, 대통령"을 연호했다. 盧당선자는 만면에 미소를 띈 채 손을 들어 답례했다. 하늘에는 색종이 대신 A4크기의 복사지가 뿌려졌다. 지지자들이 하회탈과 꽃다발을 선물하자 盧당선자는 탈을 써보이며 지지자들에게 답례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방송사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초상집 같았다. 특히 투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 구도"라고 낙담하는 당직자들이 속출했다.

당사 10층 종합상황실 관계자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지역별 파장을 파악하면서 판세 분석에 분주했다. 이해찬 본부장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조차 이런 변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고 우려했다. 鄭선대위원장 등 선대위 간부들이 이날 오전 당사에 모여 긴급 당직자 회의를 열고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으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후 들어 반전됐다. 이철(李哲)전의원 등 통합21 주요당직자들이 '공조 유지'를 주장하며 탈당하고 김민석(金民錫)전 의원도 鄭대표의 번의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당사에는 한가닥 기대감이 감돌았다.

당직자들 사이에선 "민노당 권영길(權永吉)후보 지지표가 상당수 盧당선자 지지로 돌아섰다", "오후 들어 수도권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 방송사 출구조사가 1% 안팎의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중앙당과 일선 지구당 당직자들과 열성 당원들이 일제히 가족·친지·친구 등에게 전화를 통해 투표를 독려하도록 하는 등 막판 득표율 높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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