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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팔이 스머프'로 불황 이겨낸 여의도 명물 이승주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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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스머프가 나타났다. 10여일 전 일이다. 그러나 원조 스머프가 있었다 하니, 그는 바로 '차팔이 스머프'. 르노삼성 여의도지점의 영업사원 이승주(32) 대리다. 일대에선 이미 유명인사인 그는 이번 지하철 스머프 소동 직후 '그거 당신이지?'하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방송국에서도 문의전화가 왔다. 실제로 '책읽는 스머프' 네 명 중 한 명은 이 대리에게 빌린 옷을 입고 있었다.

◇"저는 차팔이 스머프에요"= "와 책읽는 스머프다" 19일 낮, 매서운 강바람에 잔뜩 움츠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직장인들이 환호한다. 어, 스머프가 말도 하네. "저는 책읽는 스머프가 아니에요, 저는 차팔이 스머프에요"라며. 스머프탈로 얼굴을 가려서인가.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이 싹싹한 스머프에게 스스럼없이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다가와서 자동차 전단지를 집어가기도 한다. 저만치서 혼자 걸어오던 한 점잖은 신사. 계속 이 스머프를 예의주시한다 싶더니 지나가면서 슬쩍 꼬리를 잡아당겨본다. 주택가 어린이집 인근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이대리는 지난해 7월부터 점심시간이면 '차팔이 스머프'로 변신했다. 덕분에 점심도 남들보다 늦은 오후 한 시 반 쯤 돼서야 먹는다. 두꺼운 스머프 옷 탓에 여름엔 더위를 먹어 한 달간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다니기도 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꼬리를 잡아당기고 달아나기도 한다.

그래도 스머프로 유명해진 덕분인지 지점에는 "스머프 영업맨과 상담하고 싶은데요"라며 그를 찾는 전화가 더러 걸려온다.

▶ 이승주씨의 '세가지' 명함

◇왜 스머프?= "불황탓에 자동차도 잘 안 팔려요. 영업맨으로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가 있는 여의도 지역은 건물 내에 일반 방문이 어렵다. 카드키로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다른 영업방식을 늘 고민하던 그였다. 명함도 유별나다. 세 가지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데 첫번째는 삼성 로고가 찍힌 점잖은 버전, 두 번째는 스머프 만화가 들어간 것, 세 번째는 본인의 돌사진을 넣은 명함이다.

캐릭터 인형을 쓰고 영업을 해보자고 마음먹고는 인터넷을 뒤졌다. 인형 보유량은 MBC 인형극회가 많다기에 찾아갔다. 곰돌이 푸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스머프를 본 순간 마음을 바꿨다. "제가 어릴 적 스머프 만화영화를 참 좋아했거든요. 파란색이 삼성 로고와도 맞는 것 같았고."

깎고 깎아 120만원에 스머프 인형을 샀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평소 군소리 없던 아내가 이번엔 한 마디 했다. 어려운데 뚱딴지같은 인형에 이런 큰 돈을 썼으니 누가 좋아하겠나. 바로 그 달, 자동차를 세 대 팔았다. 의기양양해져 아내에게 "벌써 인형값 본전 뽑았어"라고 말했다고.

◇최다 판매왕= 그는 지점에서 작년.재작년 최다 판매왕으로 뽑혔다. 월 평균 두 대 이상은 팔았으니 '스머프 효과'도 톡톡이 본 셈이다. 스머프 차림으로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그도 신났다. 더러는 '집에 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사진을 같이 찍자는 부모도 있었다. 한여름엔 '수고하신다, 열심히 하시라'며 음료수를 건네주고 간 동년배 남자도 있었다. 처음엔 매일 나갔다. "안녕하세요. 르노 삼성 이승주 대립니다. 스머프 왔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무거운 스머프 탈을 쓰고 고개숙여 인사했다. 지금은 식상해질까봐 주 2회 나간다.

유진승 지점장은 "이 대리요? 명물이죠. 지점 뿐 아니라 회사 전체에 두루두루 유명해요. 우리 지점에 이런 스머프 몇 명 더 있어도 좋을 거 같은데요"란다.

이 대리는 사실 '똘똘이 스머프'처럼 똘망똘망한 인상이다. '스머프 옷을 입고 다니는 걸로 봐서는 오바하기 좋아하는 영업맨일지도 몰라'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바른생활 사나이다. 술도 잘 못 마신다. 이왕이면 방송가를 얼쩡거리며 영업해보라는 주위의 조언(?)에는 "내 힘으로 잘 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내년쯤엔 똘똘이 스머프 인형을 만들어 쓸까봐요. '똘똘이는 어디갔냐'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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