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배구 구단들의 욕심 '공멸'로 치닫는 자해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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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재 선수들 참 불쌍하다. 우승 한번 하겠다고 2년을 코트에 서지도 못하고 빈둥빈둥 놀게 됐으니 말이다."(아이디 '우울한')

"(배구는) 앞으로 영원히 망할 것으로 봅니다. 배구판도 요즘 선거판처럼 재미있게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아이디 '여자배구팬')

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www.kva.or.kr)가 팬들의 성난 목소리로 뒤덮였다. LG화재가 이경수(23)선수 문제의 미해결을 이유로 16일 수퍼리그에 불참을 선언한 이후부터다. 팬들은 LG화재의 안하무인격 요구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고 인기가 급락한 배구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 배구가 공멸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말 이경수 드래프트 거부 파동 이후 내홍을 앓아온 배구계가 이번 LG화재의 수퍼리그 불참 선언으로 요동치고 있다. 배구협회는 LG가 빠진 상황에서 개막전을 어떤 팀으로 치를지부터 난감해하고 있다. 몇개 되지도 않는 남자실업팀 중 중추격인 LG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도 남자부에서는 삼성화재의 독주가 예상돼 관중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현대캐피탈이 올 시즌 권영민(인하대)·윤봉우(한양대)를 스카우트해 높이와 정교함을 더했다지만 철옹성 삼성화재를 넘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란 평가다. 그럼에도 삼성은 대학 최장신 센터 박재한(2m7cm·경기대)을 스카우트한 데 이어 레프트 이형두(경기대)마저 데려갈 태세다.

배구계에서는 LG 못지 않게 삼성의 '과욕'을 탓하는 사람들도 많다.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대어들을 싹쓸이하며 장기간 배구판을 석권,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대학 감독들은 요즘 졸업생의 진로를 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배구협회가 이경수 문제 해결에 매달리느라 선수등록을 12월이 돼서야 뒤늦게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실업팀들이 권영민·이형두·박재한 등 소위 '빅3' 스카우트에 매달리는 바람에 다른 4년생들은 아직 진로를 확정하지 못한 채 등록 마감일(16일)을 넘겼다. 이래저래 배구는 위기다.

신동재 기자

dj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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