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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표정, 사람보다 더 강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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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제3회 영국애니메이션 페스티벌(22일까지)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오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모였던 관객들은 개막작 '개(Dog)'의 충격적인 영상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깊게 파인 주름살을 가진 아버지, 숨을 헐떡거리는 병든 개, 이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소년. 그리고 그 개의 숨통을 끊으려는 아버지….

어머니와 개의 죽음을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이의 오해를 통해 현대인의 의사소통 부재를 그린 이 작품에서 한뼘 남짓한 크기의 인형들이 보여준 표정 연기와 눈동자 연기는 '살아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이 5분38초짜리 인형 애니메이션을 만든 사람은 수지 템플턴(35). 그녀는 런던대 UCL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왕립예술학교(RCA)에서 애니메이션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이다.

RCA 졸업작품인 '개'는 그녀에게 영국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네덜란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 등 각종 상을 안겨주며 일약 주목받는 샛별로 만들었다. 학부시절만든 '스탠리'역시 2000년 FAN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학생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어두운 작품의 분위기에 대해 그녀는 "어떤 상상이라도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살리고 싶었다"는 말로 기획의도를 대신했다.

그녀는 자신이 27세 때부터 작품활동을 했으며 여기에는 화가인 어머니와 사진작가인 오빠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특히 "학부시절 인류학은 물론 지구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 워크숍에 참석한 템플턴은 "눈을 어떻게 그렇게 반짝이게 만들었느냐" "작은 인형으로 어떻게 세밀한 연기가 가능했느냐"고 '끈질기게'물어보는 한국 학생들 때문에 당초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회의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 '피터와 늑대'가 채널4 방송국을 통해 방영되는데 어려움이 생겨 좀 의기소침한 상태"라고 말한 템플턴은 자신의 암울한 작품 분위기에 대해 "행복한 것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으냐"며 싱긋 웃었다. 그녀는 이어 "진실의 탐구자로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예술관"이라고 말했다.

'핑구'라는 클레이메이션을 제일 좋아한다는 그녀는 어린이들을 위한 밝은 분위기의 작품도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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