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든 다 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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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헤헤헤…,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 하기는. 적어도 나만큼은 돼야지이∼잉."

굵은 목, 네모난 얼굴, 찢어진 눈, 게다가 작은 키까지. '옥동자' 정종철(25·사진)은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 남자는 '나처럼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자신있게 떠들어 댄다. 이쯤 되면 미워질 법도 한데 그에겐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만의 목소리다.

"글쎄요, 그냥 듣는다고 다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따로 연구를 해야죠. 하지만 제가 남들보다 능력있는 것 같긴 해요. 어떤 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머리에 입력이 되고 그걸 입 밖으로 내기만 해도 거의 비슷하게 들리나봐요. 누구나 하나씩 재능을 갖고 있다잖아요. 제가 타고난 재능은 목소리인가 봐요."

그는 KBS '개그 콘서트'에서 특유의 목소리 연기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오락인 테트리스의 배경 음악은 물론이고 총 소리·파도 소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요즘은 길게 여운이 남는 동네 이장님의 마이크 방송 개그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의 진가는 TV 밖에서 발휘된다. 서울 대학로에서 4년째 열리는 '갈갈이 개그 콘서트'에서 그는 지하철 달리는 소리, 번개치는 소리, 폭탄 터지는 소리 등 세상의 온갖 소리를 입 하나로 만들어낸다. 자연히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나온다.

정작 특기를 물어 보면 몇초의 쉼도 없이 나오는 대답은 "냉면 만들기". 그것도 수백 그릇 한꺼번에 만들기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졸업 후 냉면집 주방장 보조일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냉면을 너무 좋아해서 만드는 비법이나 배워보자며 시작한 게 평생의 업이 될 뻔 했다. 하루는 주방장이 아파서 식당에 나오지 못해 그가 주방의 지휘봉을 잡게 됐고, 그 후 2년이 넘게 서울의 한 유명한 냉면집 주방장으로 일했다.

"냉면에는 양념이 총 18가지가 들어가요. 주방장마다 그 노하우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알려주지 않으려고 조심하죠. 저요? 나름대로 방법을 개발해 칭찬을 받았죠."

아무리 잘 나가는 주방장 자리라도 그에게 만족을 줄 순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에 비상한 재주가 있었던 그가 입만 뻥긋하면 남들이 웃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한창 손님이 빠져나간 뒤 휴식 시간, 그는 TV를 보다가 개그맨 공채 시험 공고를 보았다. 당장 방송국으로 달려갔고, 단박에 합격했다.

주방장 시절, 그가 많이 팔리는 날 점심시간에 만들었던 최대생산량은 냉면 5백인분. 개그맨이 된 뒤 그가 웃음을 선사하는 팬들은 거의 무한대다. 그는 냉면보다 개그로 더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했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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