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 구조조정 가시화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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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증시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가 스스로 문을 닫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증권업계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박노훈 건설증권 사장은 13일 "지점들이 이익을 내지 못해 수익구조가 악화됐고 전문화에도 실패해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주주총회 개최 및 고객계좌 이전 등에 대한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건설증권은 이르면 연말까지 임시주총을 열어 청산을 결의하고 잔여 고객(약 6천명) 계좌는 신흥증권으로 넘길 것으로 보인다.

1959년 설립된 건설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자사 소유 사옥을 구입했으며 80년대 말에는 국내 대형 증권사로부터 수백억원에 매각하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라인 거래가 급속하게 늘어난 업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증시가 침체된 지난해에는 1백6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때문에 7개 지점 중 명동지점을 제외한 6개를 폐쇄했다. 하지만 최근 영업용 순자본비율이 기준치인 1백50% 밑으로 떨어져 금융당국으로부처 경영개선권고(적기시정조치)를 받게 됐다.

증권업계에서는 건설증권의 자진청산이 장이 좋아지기만 기다리며 구조조정을 미뤘던 중소형 증권사에 큰 자극제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수수료 수입에만 의존한 채 '한 해 잘 벌면 3년을 먹고 산다'는 안이한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회사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며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보급이 보편화된 이후 수수료 수입이 격감하면서 재무구조가 나쁜 증권사들 중에서 퇴출되는 곳이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 조용화 연구원은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자산가치와 주가의 비율인 순자산가치비율(PBR)이 0.5 수준으로 자산가치보다도 저평가된 상태여서 대주주가 매각을 주저하고 있다"며 "그러나 건설증권의 경우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연구원은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7% 수준인 현대·대우증권의 경우 매수자가 없는 것이 문제인 만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현철·김준술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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