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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核제재 묘수없어 해법은 협상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이 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 실천을 저지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가.

북한은 우선 1994년에 동결한 5MWe 흑연감속 원자로를 돌려 1∼2년 안에 5개 정도의 핵탄두를 만들 만큼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것이다. 그리고 짓다가 그만둔 50MWe 원자로와 2백MWe 원자로를 2∼3년 안에 완공해 1년에 핵탄두 50개에서 60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부시 정부에는 이런 가공할 시나리오를 저지할 어떤 수단이 있는가.

믿을 만한 수단이 없다. 미국이 북한에 주는 연간 50만t의 중유지원 중단 카드는 이미 써먹어 버렸다. 경제제재의 고삐를 더욱 조이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국제적인 고립상태를 견뎌낸 북한에 경제제재 강화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표현대로 승려한테서 세속적인 향락을 뺏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효과는 싱겁다.

그렇다면 영변의 핵시설을 미사일로 파괴할 수는 없는가.

불량국가에다 '악의 축'이미지를 북한에 덧씌운 부시 정부는 그런 유혹을 느낄 것이다.

앞으로 핵무기를 가질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부시가 이미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고 인정한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부시 독트린에도 맞는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면 한반도에는 큰 재앙이 온다. 미국의 공격을 받은 북한이 겁을 먹고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미국의 공격에 북한이 반격하면 곧 전쟁이다.

어제 날짜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군 소식통을 인용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개전 후 처음 한달 사이에 1백만명이 죽을 것이고 그 대부분이 남한의 민간인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용납할 수 없는 악몽이다. 중국·러시아·일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북한과 이라크가 다른 점이다.

경제제재도 안 통하고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할 수도 없다면 남은 수단은 무엇인가.

핵시설을 즉각 재가동하겠다는 북한 외교부 담화의 끄트머리에 대답이 나와 있다. 북한의 담화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 이것 이상으로 확실한 북한의 입장표명이 있겠는가.

북한은 마치 자살하러 가는 사람같이 천길 벼랑 끝에 다가서서 미국에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할 명분이 없어진다.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을 자극하고, 중국이 핵전력을 늘리면 러시아와 인도와 파키스탄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북한은 핵무장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을 요구한다. 말로 하는 보장이 아니라 문서로 된 보장을 요구하면서 미국에 시간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 핵시설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의 제거와 감시단의 철수까지 요구한다.

북한은 미국에 공개적으로 최대한의 모욕을 주고 미국을 궁지로 몬다. 위험한 불장난이다. 부시는 클린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까지 온 북한은 미국한테서 체제 안전보장의 언질을 받지 않고는 물러설 것 같지가 않다.

북한의 핵무장 저지가 지상명령이라면 미국은 대화재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쟁이 아니라도 사태가 미국의 북한 공격 직전까지만 가도 한국은 잃을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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