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오쯔양 추모 불씨 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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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의식이 있을 당시 잠옷 차림으로 앉아 있는 마지막 모습. 자오는 지난 14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만에 숨졌다. 그는 13세부터 한평생 공산혁명과 개혁.개방 정책의 선봉에 섰다. 1989년 6.4 천안문사태 당시 최고 실권자의 뜻을 거스르다 16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해야 했다.[홍콩 명보 특별 제공]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장례.추모를 놓고 중화권이 떠들썩하다. 중국 지도부는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사태의 재발을 우려해 '작고 조용한'장례식을 치르려고 하지만 유족과 민주화 단체들은 추모의 불씨를 지피려고 한다.

◆ 치열한 신경전=유족과 중국 당국 간의 신경전으로 인해 장례식이 상당히 늦춰질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과 유족들이 추도식에서 낭독할 조사(弔詞)의 내용을 두고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유족 측은 "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자오 전 총서기의 공(功)과 과(過)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 반면 중국 당국은 "자오 전 총서기의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며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편 외교부의 쿵취안(孔泉) 대변인은 "노(老)당원의 예우에 맞게, 국법에 따라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19일 저녁부터 그동안 봉쇄했던 일반 시민들의 문상과 조화(弔花).조사(弔詞) 반입을 허용했다. 이들은 왕푸징에 있는 상가의 빈소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만 슬픔을 표할 수 있다.

◆ 추모 바람과 역풍(逆風)의 충돌=중국 대륙에서 자오쯔양의 추모식을 하려는 인파를 강제 해산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관찰(HRIC)'이라는 단체는 "지난 17일 상하이(上海)에서 700~800명의 군중이 시 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가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탄원서를 내려다 1000여명의 공안에게 체포되거나 구타당했다"고 전했다. 18일엔 베이징에서 400~500명의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자오의 자택에 있는 빈소로 들어가려다 골목 입구에서 저지당했다고 한다. 자오의 사진.기사를 실은 외국 신문 역시 사흘째 관련 기사가 찢긴 채 배달됐다.

홍콩의 중심가 빅토리아 공원 안에 설치된 분향소엔 시민들의 헌화와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21일엔 촛불 추모 집회가 열린다. 홍콩 입법회에선 지난 19일 민주파 의원 25명이 의장 승인 없이 추모 묵념을 올리는 데 항의해 친중파가 퇴장하는 소동도 있었다.

홍콩.베이징=이양수.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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