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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줄어드는 성우들 … 한때 파업 결의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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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방송사 성우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 때는 탤런트 보다 몸값이 높았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다. 이달 초 KBS가 ‘토요명화’ 대신 드라마 ‘겨울연가’를 편성하자 성우들은 파업 결의로 맞섰다. 결국 KBS가 외화 미니시리즈 신설과 ‘겨울연가’후 한 달간 외화 방영을 약속하는 것으로 갈등은 일단락지어졌다. 그래도 성우실 분위기는 여전히 ‘폭풍 전야’다. “일거리만 끊기면 당장 실업자로 전락할 신세”라는 푸념이 쏟아진다. 화려한 과거와 초라한 현실, 그 사이에서 성우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 아, 옛날이여!=1960년에는 TV가 없었다. 라디오 보급률도 높지 않았다. 그래도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60년에 방송된 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한운사 작)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KBS 성우 1기생인 오승룡(70)씨는 "'현해탄은…'이 방송되던 저녁 7시 40분만 되면 길거리 전파상 앞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며 "그 시간에는 길에 택시도 다니지 않을 정도였으니 '모래시계'보다 인기가 더 높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당시 성우는 국민의 '우상'이었다. 64년에 북한의 간첩이 잡혔을 때 일이다. 그의 수첩에는 암살 대상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성우 이름까지 끼어 있었다. 인기 절정을 달리던 반공 라디오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은 성우들이었다. 청와대에서 "출연 성우들 모두 보호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 KBS(당시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2년차에 불과했던 성우 최흘(69)씨는 "완전무장한 경찰관들이 한 달 동안 24시간 내내 집 앞에서 보초를 섰다"며 "안방에는 경찰서와 바로 연결되는 비상벨까지 설치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어쩌다 초상집에 가면 문상객들이 서로 악수하려고 난리였다"며 "오히려 상주에게 미안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인이 없던 시절, 악수 신청은 스타를 향한 최고의 환호였다.

61년에 KBS-TV 방송국이 생겼지만 TV 보급률은 낮았다. 성우들의 전성시대는 그러고도 오랫동안 계속됐다. 엄앵란.윤정희.문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도 녹음 기술 문제로 성우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계속 줄어드는 파이= 64년에 동양TV가 개국했고, 68년에는 문화방송이 TV방송을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컬러TV 시대까지 열렸다. 라디오 드라마와 외화 더빙에 의존하는 성우들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졌다.

특히 80년대 언론 통폐합은 성우 시장의 수요와 공급까지 비틀어 놓았다. 당시 KBS 성우는 모두 64명이었다. 그러나 통폐합으로 타방송사 성우들이 옮겨오면서 224명으로 늘었다. 당초 약속과 달리 타방송사에서 옮겨온 프로그램은 2~3년이 지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성우는 늘었는데 '밥그릇'만 줄어든 셈이다. 현재 한국성우협회 회원은 623명이다.

지금도 연간 1억원 이상 버는 스타 성우가 있다. 그러나 김환진 KBS 성우극회장은 "그런 고소득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며 "연간 소득 1000만원 이하가 95.5%에 달한다"고 밝혔다. 성우는 공채를 거치지만 방송사 직원은 아니다. 3년 전속이 끝나면 누구나 프리랜서로 나서야 한다. 월급제나 연봉제도 없다. 그래서 방송사와 성우극회는 노.사 관계가 아니다. 단순 계약 관계일 뿐이다. KBS 관계자는 "요즘은 성우들이 외화 더빙은 물론 라디오DJ, 쇼 프로그램 소개, 게임 더빙, 광고, 프로그램 해설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2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KBS 새내기 성우가 된 이지환(31)씨는 "우리말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외화는 꼭 방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뉴미디어의 발전 속에서도 성우들이 새로운 몫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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