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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40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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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에서 ‘나이 사십에 불혹(不惑)’이라 했다. 그러나 공자쯤이니 세상사에 미혹(迷惑)되지 않지, 일반인에게 40세는 온갖 유혹의 한 중심이다. 그래서 ‘꾐에 혹하기 쉬운 때이니 중심을 잘 잡으라’는 경구로 받아들이는 게 합당하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40세가 넘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럴 것이 40세는 인생의 반환점이자 변곡점(變曲點)이다. 한국인의 남녀 평균수명도 80.1세가 아닌가.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기업가도 대부분 40세에 달리던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로를 찾았다. 장자크 루소가 “10세는 과자, 20세는 연인, 30세는 쾌락, 40세는 야심, 50세는 탐욕에 움직인다”고 설파한 것과 맞아떨어진다. 야심이야말로 성공의 추동력일 테니까.

40세는 역사적으로도 전환점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유일신 ‘알라’로부터 선택됐다는 소명의식에 확신을 갖게 된 것도 40세 때다. “산아, 내게로 오라” 하며 이산(離山)의 기적을 통해 오늘날 유대교·기독교와 더불어 ‘한 뿌리 세 종교’의 고리를 구축한 시점이다.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이 궁형(宮刑)을 받은 것도 40세쯤이다. 그의 분노가 없었으면 ‘역사’도 없었다. 독일을 침공한 나폴레옹이 피란 중이던 괴테를 만난 것도 40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일곱 번 읽었다는 나폴레옹은 괴테와 대화에서 제국보다 큰 인간을 느낀다. 이 또한 현대사의 전환점일 터다.

한자로 쓰여진 저술로는 한·중·일 3국을 통틀어 가장 방대한 양을 남긴 다산(茶山)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 것도 40세 때다. 이때부터 18년간 『목민심서』를 비롯해 숱한 실학(實學)의 진수를 지었다. 송강(松江) 정철이 율곡(栗谷) 이이의 충고에 벼슬을 내놓고 낙향한 것도 이 나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선거일 현재 40세가 넘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25세의 젊음도 괜찮지만, 대통령은 그래도 ‘불혹(不惑)’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의 40대 남성은 가장 불행한 집단이란다. 한국심리학회의 조사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행복한 집단은 40대 여성이다. 남자는 경쟁과 유혹에 시달리는 반면 여자는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남자들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절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절반의 불행을 감수할 수 있지 않겠나. 사랑의 이름으로 말이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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