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로 위 시승차’ 택시 시장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의 신형(YF)쏘나타 택시를 구입한 개인택시 기사 윤모(53)씨는 요즘 기아자동차의 K5 택시를 볼 때마다 입맛이 쓰다. 몇 달만 더 기다렸으면 두 모델을 비교해 보고 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는 “YF쏘나타도 장점이 있지만, 택시로 쓰기엔 디자인이 너무 화려하다”며 “지금 산다면 두 차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는 윤씨의 속을 끓일 일이 하나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자동차가 뉴 SM5 택시를 출시하기 때문이다. 그간 현대차의 쏘나타가 주도해 온 국내 중형택시 시장에서 신형 택시 3파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전국의 택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5만여 대(법인 9만여 대, 개인 16만여 대)다. 연간 차량교체 수요는 4만~5만 대 정도다. 지난해는 4만405대가 팔렸다. 전체 승용차 내수(117만4743대)의 3% 수준이어서 그리 큰 시장은 아니다. 가격도 일반 승용차보다 싸다. YF쏘나타(Y20 모델)의 경우 승용차(휘발유)는 2172만~2798만원이지만, 택시(LPG)는 1580만~1923만원으로 30% 정도 싸다. 택시가 마진이 적다는 얘기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가 택시에 쏟는 정성은 생각 이상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강철구 이사는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특정 차종의 단점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판매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신차는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다. 새로 나온 차를 타 볼 기회가 많지 않은 일반 소비자에게 ‘시승차’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5월 K5 택시를 내놓으면서 승용차 모델에도 없는 연료절약 기능(ISG 시스템)을 넣었다. 차가 멈추면 자동으로 엔진가동을 중단하고, 출발할 때 순간적으로 재시동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주행 때 연비를 높여주는 기능이다. K5 택시가 이를 도입하자 현대차의 YF쏘나타 택시도 곧바로 다음 달 같은 기능을 추가했다. 9월 나올 뉴 SM5 택시는 차량 길이가 4885㎜로 다른 중형택시보다 4~6㎝ 길다. 일본 닛산의 자회사에서 만든 무단변속기의 일종인 엑스트로닉 변속기를 사용해 변속 충격이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신차가 나오면 일반 승용차와 택시 모델을 거의 동시에 내놓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구전·시승 효과를 노린 전략”이라고 말했다. 반면 르노삼성은 승용차·택시 모델 출시에 시차를 두고 있다. 이번에도 뉴 SM5는 올 1월 나왔으나 택시 모델은 다음 달 출시된다. 회사 관계자는 “신차를 산 소비자가 차별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대신 르노삼성 택시는 잔고장이 없다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차 택시 중 판매 선두는 여전히 YF쏘나타다. 하지만 출시 직후 월 1300대가 넘던 판매량은 지난달 702대로 줄었다. K5 택시는 출시 첫 달인 5월 202대에서 다음 달엔 634대로 확 늘면서 YF쏘나타를 턱 밑까지 쫓아갔지만, 지난달엔 585대로 잠시 주춤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수요가 없어 못 파는 게 아니라 생산량이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며 “현재 승용차·택시를 포함한 대기 고객만 2만3000여 명이어서 곧 추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뉴 SM5 택시가 나오면 10여 년 전과 비교해 많이 떨어진 택시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림대 김필수(자동차학) 교수는 “하루 10시간 이상 운전하는 택시기사의 의견은 일반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준다”며 “신차를 출시한 업체들의 택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