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조기교육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어릴 때 영어를 가르치면 빨리 마스터할 것이란 생각은 일종의 환상입니다."

응용언어학·교육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헨리 위도슨(67) 런던대 명예교수는 한국사회의 조기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 따가운 일침을 놓았다.

그는 조기 영어교육보다는 영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 한국지사(지사장 이정자)의 초청으로 지난 6일 방한,각종 세미나·강연회에 참석한 위도슨 교수는 '옥스퍼드 혼비 영영사전'의 편찬 작업에 참여하는 등 언어교육학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 조기교육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면 빨리 습득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언제부터 영어를 가르치는가보다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5세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도 10세가 되면 그 때 배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언제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은가.

"언제가 가장 적당하다는 답은 있을 수 없다. 어릴 때 배우면 발음 면에선 유리할 수 있다. 반면 사고력이 형성된 뒤에 배우면 구조적·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0세부터 수학을 배운 학생이 5세부터 시작한 학생보다 더 잘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어 교사·사용 환경·교수법 등 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영어를 배워야 하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권 국가의 교과서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권 국가의 가치관에 동화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는 세계적인 공용어로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영어를 배울 때 영어권 국가의 가치관까지 수입하는 것은 일종의 종속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영어 학습에 대해 충고를 한다면.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구어(口語)영어에 서투른 것은 체면을 중시하고, 타인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회문화적 요소 때문인 것 같다. 영어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모두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