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9> 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4 무령왕릉 유물 수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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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무령왕릉 내부 실측작업이 밤 10시쯤 끝나자 곧바로 유물 수습작업이 이어졌다. 2개조가 꾸려져 무덤 내부의 동쪽 편은 김원룡 단장과 지건길이, 서쪽 편은 김영배 공주박물관장과 손병헌이 맡아 유물들을 수습해 나갔다.

먼저 널길인 연도 중앙에 버티고 있던 석수(石獸)를 들어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고 구경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유물들을 한시라도 빨리 공주박물관으로 옮겨야 했다. 이후부터 사진 촬영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유물들이 무덤 안에서 수습되어 나오는 대로 이호관(李浩官) 학예연구관이 진두지휘, 곧바로 응급포장을 해 유물상자에 담아 공주박물관으로 운반했다.

무령왕릉임을 알려주는 족보(族譜)나 다름없는 묘지석(墓誌石)을 들어내면서 '백제사마왕(百濟斯麻王)…'이라고 쓰인 글자를 확인하고는 마치 무령왕을 대하는 듯해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널길에 놓여 있거나 흩어져 있던 부장품들을 모두 수습해 밖으로 내 온 후 드디어 벽돌방에 무너져 있던 관재(棺材)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널 속에 묻혀 있던 부장 유물들이 하나하나 얼굴을 드러냈다.

바닥은 물론 벽돌 틈새를 빽빽이 비집고 나온 실낱같은 가는 나무뿌리들은 유물들에 얼기설기 뒤엉켜 있어 그 뿌리들을 뜯어내지 않으면 유물 수습이 어려울 정도였다. 가위 나무뿌리와의 전쟁이었다. 부장 유물 수습작업은 자연 더디게 진행됐다. 그런 작업환경에서도 네 사람의 입에서는 자주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중요한 유물이 많았다.

밤을 새워 무덤 내부를 밝히던 발전기 모터 불빛이 밝았다 흐려졌다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유물을 수습하던 손길들은 쉴 틈이 없었다. 주요 유물을 대부분 수습하고 바닥의 나무뿌리는 물론 먼지까지 완전히 쓸어담아 유물 수습작업을 끝낸 시간은 다음날 아침 8시쯤이었다.

전날 밤 10시부터 무덤 내부에 쭈그리고 앉아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무려 10시간 동안 꼬박 유물을 수습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수습 요원들도 의아해할 정도였다. 보도진과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구경꾼들도 함께 밤을 새웠다. 세계의 발굴역사(發掘歷史)에 기록될 정도로 전례가 없는 열의와 관심이었다.

이렇게 해서 배수로 공사 중 인부의 우연한 삽날에 걸려 존재가 확인된 백제 무령왕릉은 발견된 지 5일 만에 역사적인 발굴조사가 일단락됐다.

그날 아침 신문들은 대부분 1면을 모두 백제 무령왕릉 발굴기사로 채우고 있었다. 왕릉 발굴에 대한 관심도를 실감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의 유력한 신문들도 1면을 무령왕릉 발굴기사로 채웠다. 발굴은 끝났지만 쉴 여유가 없었다. 출토유물 목록을 작성해야 했고 유물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길 준비도 해야 했다. 모든 과정이 조사 요원들의 몫이었다. 이런저런 준비로 이틀이 순식간에 지났다.

당시 공주읍 영산공원에 있던 공주박물관은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의 본관 건물이던 선화당(宣化堂) 건물을 일제시대 때 당시 위치로 옮겨와 조선총독부 공주분관으로 사용하다 광복 후 공주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목조건물인데다 넓이가 80여평에 불과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관하기에는 공간이나 시설이 턱없이 모자랐다.

때문에 일단 서울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야 했다.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운반 상자가 필요했다. 한번은 읍내에 나가 유물 운반에 필요한 합판 등을 구입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주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 뒤에다 대고 일면식도 없는 공주 주민이 "저놈들이 무령왕릉 유물을 가져가려 한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헐레벌떡 공주박물관으로 돌아와 보니 사태는 이미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십명의 공주 읍민들이 박물관으로 몰려와 "무령왕릉 출토유물은 단 한점도 공주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돈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마련하겠다""그래도 공주 밖으로 옮기겠다면 실력으로 저지하겠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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