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과 SOF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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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요. 외국인이라도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으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어요. 외교관과 군인에 대해서는 나라들끼리 따로 약속을 만들어 특별한 지위를 보장해 주고 있거든요.

예컨대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한국인과의 분쟁에 휘말렸을 때 한국법과 미국법이 다르다면 어느 쪽 법을 따라야 할까요. 당연히 서로 자기네 법에 따라야 한다고 다투겠죠. 주둔군 지위협정은 이같은 다툼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꼼꼼하게 정해 놓은 협정입니다. 영어로는 'Status of Forces Agreement'인데 줄여서 SOFA라고 합니다.

SOFA에는 미군 범죄에 관한 규정만 있는 건 아닙니다. SOFA에 따라 미군은 한국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공항 출입국대를 거칠 필요 없이 여행증명서만 보여주고 바로 군용기를 탈 수 있어요. 또 SOFA 규정상 미군은 우리 정부가 제공한 땅을 무상으로 무기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군이 한국인에게 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지에 대한 규정도 있어요. 공무 수행 중 일어난 피해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피해액의 25∼50%를 대신 물어주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와 관계없이 일어난 피해는 가해자인 미군을 상대로 재판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이런 민사소송은 거의 없다고 해요. 어렵게 가해자의 신원을 확인해 재판을 걸어도 미군이 법정에 나오지 않거나 미국으로 돌아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2001년 SOFA를 개정하면서 한·미 양국이 미군 부대의 환경오염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가 강제로 조사할 수 없게 돼 있어요.

한국과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1966년 SOFA를 맺었습니다. 그 이후 두차례 개정됐는데 SOFA가 불평등하다는 한국 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죠. 2001년 개정에서는 살인·성폭행 등 12가지 중범죄에 대해 한국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미군 범죄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전에는 무조건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에만 한국 검찰이 미군 범죄자를 구금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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