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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10여년 전 김장훈의 콘서트에 갔다가, 한 밴드를 만났다. 두 사람으로 단출하게 이루어진 밴드였다. 김장훈이 뭐라고 이름을 소개했는데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약간 우울하면서도 격정적인 노래가 귀에 남았다. 김장훈의 어떤 노래보다도, 오래 기억에 박혀 있었다.

'꽃'이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 하나로 나는 그들의 팬이 됐다. 그리고 얼마 후 TV를 보다가 어디선가 본 두 남자를 만났다. 음악을 하겠다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두 남자가 사람들을 만나고, 음반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김장훈 콘서트에서 본 그들이었다. 바로 '유 앤 미 블루'.

한국 모던 록의 선구자였던 유 앤 미 블루는 너무나 빨리 사라졌다. 단 두 장의 음반만 남기고. 음반도 다 절판되고, 그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방준석이란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동경비구역 JSA''후아유''YMCA야구단'의 음악감독으로, 유 앤 미 블루의 한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방준석은 무거운 드라마와 청춘영화·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마다 각각 고유한 음악들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만 고집할 수 없는 영화음악가로서의 방준석도 탁월하다.

그런데 또다른 한 멤버인 이승열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기덕 감독의 신작 '해안선'을 보기 전에, 뮤직 비디오부터 봤다. 딴 짓을 하면서 듣고 있는데, 유난히 가슴을 때렸다. 이승열, 그 순간에는 그게 유 앤 미 블루의 이승열인지 몰랐다.

그런데 극장에 가서 '해안선'을 볼 때는 이승열의 '파도'가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파도'는 뮤직 비디오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영감을 받은'이라는 명목으로 영화에 삽입되지 않은 노래들을 모아 사운드트랙을 만드는 상술이 있기는 하지만, '파도'가 엔딩곡으로라도 쓰이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해안선'의 실질적인 타이틀곡이자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과거는 흘러갔다'다. 무대 막사에 누워 군인들이 취침할 때 장동건이 구슬프게 부르는 그 노래. 영화의 마지막, 총을 든 강상병은 명동에서 다시 한번 그 노래를 부른다.

'해안선'의 음악은 '복수는 나의 것''반칙왕'의 장영규가 맡았다. 약간 신경질적이고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차분하게 '해안선'의 OST를 다시 들어보니, '파도'는 영화에 비해 너무 심지가 굳다. '해안선'의 강상병에게는 처연한 '과거는 흘러갔다'가 더 어울린다. 김기덕 영화의 단골인 상처입은 동물에게는.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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