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없는 섬 비금도 첫 서울대생 꿈 부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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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사는 강하라(18·비금고 3)양은 다음 달 8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올해 서울대 수시전형 접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강양은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 전형’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다. 그는 당초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목표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목포에서 50㎞나 떨어져 배로 2시간을 가야 하는 비금도는 학업 여건이 좋지 않다. 섬 안에 고교는 공립인 비금고가 유일하고 고교생을 위한 학원도 없다. 그래서 강양도 학원을 다녀 보지 못했다.

이달 초 전남 목포에서 서울대 주최 ‘미래인재학교’에 참가한 완도고 학생들이 조국 서울대 교수와 향후 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일찌감치 목포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한때 250명이던 학생 수가 지금은 80명으로 줄었다. 1985년 개교 이래 비금고가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도 이 탓이다. 강양이 갑자기 목표를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은 서울대가 3월 발표한 ‘지역할당 방침’ 덕이다. 전국 86개 군(郡) 단위에서 학생 한 명 이상씩을 뽑겠다는 내용이다. 같은 군 내에서 수능 2개 과목 2등급 이상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 등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한 명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김경범 교수는 “특목고·강남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고 2005년부터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했지만 38개 군이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못 내는 등 불균형이 심했다”며 “지역할당제는 소외된 군에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침이 전해지면서 비금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교사 관사를 개조해 기숙사를 만들었고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설도 설치했다. 서울대로 목표를 바꾼 강양과 친구들은 이곳에서 합숙하며 공부를 한다. 인근 학교에서 좋은 교사도 초빙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부모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최병호 비금고 교장은 “학부모들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고기를 구워 주러 온다”며 “지역할당 방침 덕분에 우리 섬에서도 서울대생을 한 번 배출해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신안군에서도 지원을 확대해 점심과 저녁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정부에서 10억원을 지원해 주는 것보다 대학에서 낙후 지역을 배려해 한 사람 더 뽑아 주는 게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진학 성적이 좋지 않으면 주민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신안군에서는 지난해에야 최초로 서울대 입학생이 한 명 배출됐다.

서울대는 지역할당과 함께 ‘미래인재학교’ 운영을 통해 교육여건 취약 지역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수들이 해당 지역을 직접 찾아가 학생들의 멘토가 돼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달 초 목포에서 열린 미래인재학교에선 신안·무안·완도군 등 6개 지역에서 온 고교생 158명이 서울대 교수들과 4박5일간 합숙을 했다. 교수들은 철학·물리·공학 강의 등을 하고 진로 상담도 해 줬다.

목포=김민상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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