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反美감정]높아지는 反美 수위:50년 韓·美동맹 … 신뢰 흔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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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의 반미 감정 수위가 심상치 않다. 주한미군의 여중생 사망사건과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기류가 종교·문화계까지 확산되고 있고, 반미 주장에 공감하는 일반 시민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국민의 미국에 대한 신뢰 저하로 반세기에 걸친 한·미 동맹 관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한·미 양국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선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특히 반미 문제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있는 상황은 정부를 전면에 나서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반미 감정 실태와 한·미 양국의 대책을 짚어보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알아본다.

편집자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광동여고 2년 김보민(17)양은 지난 9월 이후 미군기지 앞에서 열리는 여중생 사망사건 항의 시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최근 친구 5명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에 시위 현장에서 찍은 영상물과 홍보 글 등을 수시로 올리고 있다.

"두 여중생의 사고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과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미군 무한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반미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일부 대학생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미국 시설에 침입하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반미 의식이 확산되는 것은 이같은 시위 때문이 아니다. 과거에는 반미 운동이 운동권 대학생과 진보 시민단체 등에 국한해 전개돼 왔으나 최근 열리는 반미 집회 참석자들은 중고생·연예인·운동선수·주부 등 그야말로 범국민적이다.

운동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게시판에 개설된 반미 토론방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무수히 올라오고 있다.

광화문 시위에 등장한 촛불 행진 역시 한 30대 회사원이 인터넷에 호소문을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현상이 미국 권위를 인정하는 과거 세대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인 만큼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일각에선 진보 성향의 인터넷·신문 매체가 늘어나면서 반미 의식이 더 퍼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가 지난 여름 전세계 44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53%가 미국에 대해 호감을 가진 것으로 답해 44개국 중 중간 정도의 호감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73%에 달하고 대테러전쟁에 대한 동의를 묻는 질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72%에 달하는 등 부시 미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아시아·아프리카 17개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한국인들의 반미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주로 부시 미 대통령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는 반미 열풍을 주도하는 디지털 세대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기존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디지털 세대들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은 이번 반미 운동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혜신 기자

hyaes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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