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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유통업계:섬세한 안목 '오너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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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유통업계는 여성들이 임원으로 승진하기 힘들다. 일반인들이 쉬는 주말에 근무해야 하는 데다 퇴근도 오후 8시 이후로 늦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 많아 여성들이 40대 이후까지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유통업계에 여성 임원은 한명도 없다. 그러나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많다. 신세계 이명희(59)회장, 동양제과 이화경(46) 사장, 롯데쇼핑 신영자(60) 총괄 부사장, 애경 장영신(66)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창업자의 자녀나 부인으로 오너 CEO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5녀인 신세계 李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이후 5년 만에 신세계를 30대 그룹으로 키워 냈다. 선친을 닮아 판단력이 예리하고 민첩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월마트 등 세계적인 할인점의 국내 진출에도 불구하고, 순수 토종업체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마트도 그의 아이디어다. 명품과 패션을 보는 눈에도 일가견이 있어 신세계백화점을 '고품격 백화점'으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사장들에게 철저하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룹 인사와 사업구조·방향 등 굵직한 것만 챙긴다. 지난 7월 이화여대에 경영관을 지어주기도 하는등 여성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자의 차녀인 동양제과 李사장은 유통업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CEO 중 한 명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75년 동양제과 구매부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 26년 만인 2000년 사장이 됐다.

지난해 동양제과에서 분리된 외식(베니건스) 및 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 영화관 등) 분야의 CEO도 맡고 있다.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유명한 초코파이 정(情)시리즈 광고는 그의 작품이다.

당시 초코파이를 모방한 제품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위기 국면에 처했을 때, 초코파이는 이 광고시리즈로 매출이 세 배 이상 뛰었고, 시장점유율이 70%까지 높아졌다. '다이내믹(Dynamic)'이란 말을 좋아하는 그는 "언제 어디서든 살아 숨쉬며 강한 경쟁력이 있는 경영을 하겠다"고 말한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롯데쇼핑 辛부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73년 롯데호텔에 이사로 입사했다. 80년 롯데쇼핑 영업이사로 옮긴 뒤 지금까지 백화점 한길만 걸어왔다. 롯데백화점이 업계 1위가 된 데는 그의 명품을 보는 안목과 상품구매 수완이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명품 수입 회사를 창업했고 영화관 사업에도 뛰어 드는 등 항상 경영 의욕이 넘친다. 그의 두 딸들도 모두 롯데쇼핑에서 근무하고 있다.

애경 張회장은 경기여고와 미국 체스트넛힐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창업주인 남편이 작고한 후 72년 경영일선에 뛰어 들었다. 이후 생활용품과 백화점 등에 매진해 현재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의 대표적인 생활용품 유통회사로 키워냈다.

"흑자를 내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경영철학으로 외환위기 때도 흑자를 내 당시 여대생 등에 의해 '가장 존경하는 여성경영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오랜 경영활동을 통해 느낀 여성경제인의 어려움 때문에 여성경제인연합회를 창설,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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