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올라주면 만사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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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주식투자를 하든 말든 그저 주가가 오르길 바라야 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집 한 채씩은 가지고 있는 뉴요커들에겐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증시 침체가 재산세 인상을 몰고온 한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틀전 재산세를 18.5%나 올리는 법안에 서명했다. 재산세가 한번에 이만큼 오르기는 처음이란다. 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벌충하기 위해서다.

뉴욕시의 올 회계연도(2002년 7월∼2003년 6월) 적자는 11억달러, 내년도엔 6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더이상 방치하다간 파산에 이를지 모른다며 손을 쓴 게 세금인상이다. 뉴욕시는 세금만 올리면 시민들의 비난을 감당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먼저 지출억제를 약속했다. 35억달러의 예산삭감을 결정하자 시 의회가 세금인상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뉴욕시는 요즘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동원한다.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를 분리 수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예산 절약을 위해서다. 이 나무를 수거해 잘게 부순 다음 아이들 놀이터 등에 깔아주었으나 돈이 적잖이 든다며 일반 쓰레기와 같이 버리라고 한 것이다.

재정이 이렇게 어려워진 이유의 상당 부분을 뉴욕시는 월가의 부진으로 돌린다. 월스트리트가 활발하게 돌아가야 세수가 좋은데 벌써 3년째 증시 침체로 죽을 쑤고 있으니 큰 세원(稅源) 하나가 펑크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월가의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은 투자자를 속였다 해서 거액의 벌금을 맞을 판이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증시가 좋아지면 만사가 좋아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기업들은 여기서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늘릴 수 있으니 좋고, 투자자들은 주머니가 두둑해져 소비경기를 북돋우니 좋다는 말이다.

주가가 적당히 올라주면 기업·국민·정부가 다 좋아할텐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오를 땐 천정부지, 떨어질 땐 날개 없이, 그게 증시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예 속편할 것 같다.

simsb@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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