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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들을 매혹시키는 멋진 신세계DVD안방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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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7면

#. 디비디? DVD!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했던가? "디비디? 디비디가 뭐지?" DVD라는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십중팔구는 되묻기 일쑤요, 생김새부터 CD와 혼동하곤 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요즘엔 아예 DVD 플레이어가 신혼 부부의 필수 혼수품이 됐다. 내친 김에 웬만한 극장이 부럽지 않을 홈 시네마까지 갖춘 이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DVD 전문 월간지도 4∼5종에 이른다. DVD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던 타이틀 몇개로 시작했던 초기 몇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 한국 DVD계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양과 질 모두 DVD의 해로 부를 정도로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

올해 DVD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름 12㎝, 두께 6㎜의 작고 둥근 디스크에 불과하지만 종전의 어떤 오디오·비디오(AV)매체보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해온 DVD. 2002년 그곳에선 영화광을 사로잡은 눈부신 신세계가 펼쳐졌다.

#. 작가영화 날개 달다

약 4천장, 올해까지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이다. 최근 몇년간 개봉된 웬만한 영화는 거의 DVD로 만날 수 있다. '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나 '스타워즈 에피소드 2:클론의 습격' 같은 굵직굵직한 작품은 출시 시기도 해외와 별반 차이가 없다.

국내 출시는 꿈도 꾸지 못했을 타이틀들, 극장에서도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잉그마르 베리만이나 우디 앨런 등 이른바 작가영화나 할리우드 고전의 연이은 출시도 4천장이라는 만만찮은 숫자에 가세했다.

'자이언트 로보''카우보이 비밥''공각기동대' 등 매니어가 포진해 있는 재패니메이션도 쏟아졌다. 특히, 재패니메이션은 많게는 수십만원대에 달하는 일본 제품과 품질은 유사하면서도 가격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의 실사 영화 '아바론' . 메모리얼 박스라는 이름으로 10만원이 훨씬 넘는 값에 출시됐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품질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2만원대에 불과했다. 하반기 최고 화제작 중 하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 문제됐던 붉은 화면을 보정하고 일본에도 없는 제작 기록을 덧붙이는 등 오히려 국내 타이틀이 더욱 화려했다. 더 이상 생경한 언어를 감수하며 미국·일본 등 이웃 나라 사이트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DVD 10만장 시대

또 다른 성과는 한국영화 DVD의 약진이다. '친구'를 비롯해 '8월의 크리스마스''무사' 등 화제작이 속속 출시됐고, 원본 필름에서 직접 그림을 따오는 등 이제까지의 단점이었던 화질을 개선했다. 정성과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서플먼트(부록)과 남다른 겉포장까지, 속과 겉 모두에 쏟아부은 정성과 만듦새는 한국영화 DVD의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렸다.

외국 타이틀의 서플먼트 한글 자막화도 확대됐다. DVD 대중화의 공신 중 하나다. 그림의 떡처럼 구경만 하던 방대한 서플먼트의 한글 자막으로 비로소 DVD를 1백% 즐기게 됐다.

국내에도 10만장이 넘게 팔린 타이틀이 등장한 것도 큰 뉴스다. 주인공은 예상대로 DVD계의 지존, '매트릭스'. 17만장 이상이 판매됐다고 한다. 이른바 스테디셀러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수백만장이 팔리는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국내 DVD 시장도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DVD 대중화의 내일

빛이 있다면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다. '해리 포터''반지의 제왕' 같은 7만장 이상의 이른바 대박 타이틀, 혹은 3만장 이상의 히트작은 대부분 AV적으로 뛰어난 몇몇 영화에 집중됐을 뿐 국내 DVD 시장의 경쟁력은 여전히 물음표다. 올해 유난히도 많았던 리콜 사태나 판권이 불분명한 수상쩍은 제품도 난립했다.

올해도 극장가는 예외 없이 다사다난했지만 이렇듯 환호와 우려 속에 DVD와 함께 숨가쁘게 달려온 2002년 안방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활기찬 한해를 보냈다. 그런데 잠깐, 아직 올해가 다 간 것은 아니다.

각기 석상과 넉장의 디스크로 구성될 '반지의 제왕' 확장판과 '맨인블랙 2'부터 전세계에 '에바'팬을 양성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까지 아직도 많은 타이틀이 기다리고 있으니, DVD 팬이여, 결코 방심하지 마시길.

모은영(DVD 칼럼니스트)

nandol@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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