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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8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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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전까지 가는 동안에 검표를 한다는데 어디 쯤에서 할지를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마도 천안을 지나면 앞 뒤 칸에서 시작하는데 조치원 어름에서 끝날 거라고 했다. 워낙 통로에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게다가 얼마 못 가서 다음 간이역에 당도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검표를 마친 칸으로 유유히 옮겨타면 되었다. 우리 말고도 무전여행 차림의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지나치는 철도 연변의 풍경들을 빠짐없이 바라보았다. 너른 들판이며 강의 철교들이며 먼 산을 등진 작은 마을의 초가집들이며 일하는 농부들과 논둑길을 달리는 벌거벗은 아이들. 그리고 소도시 주변의 찌그러진 판잣집들과 아직도 전쟁 때 파괴된 채로 곳곳에 남아 있는 공장의 폐허들이 보였다.

그래도 목적지가 있어야 하니까 광길이와 나는 우선 서쪽으로는 백제의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호남으로 내려가 광길이네 순창 시골에 들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근처 남원에는 방학으로 내려가 있을 그림쟁이 성진이가 할머니 댁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이었다. 더욱 남쪽으로 내려가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거쳐서 부산으로 되돌아올 작정이었고 동쪽으로는 신라의 유적지인 경주를 거쳐서 다시 경부선을 따라 서울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여정을 짜두었다. 이를 테면 대단히 학구적인 역사적 탐방인 셈이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 시간쯤 걸리던 대전에 하루종일 걸려서 저녁 무렵에야 외곽에서 내렸다. 외곽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기차가 역 구내로 들어가기 전에 선로 정리를 거의 수신호로 받기 마련이라 한참이나 서있어야 했는데, 우리는 적당한 건널목 쯤에서 서행하는 기차에서 뛰어 내리거나 하던 것이다. 비는 아직도 줄기차게 내리고 있어서 우리는 군용 판초 우의를 꺼내어 걸쳤다. 머리 위에는 학생모를 썼지만 비에 젖어들자 오랫동안 배었던 땀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하여튼 공주로 나가는 지방도로에는 차도 별로 없어 보였다. 첫날 첫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몰랐다. 더구나 우리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비상식으로 그래도 인기가 있던 것은 군용 건빵이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싸준 인절미를 갖고 있었다. 광길이와 나는 어느 길가의 농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인절미를 먹었다. 사방에서 개구리와 맹꽁이가 울었고 비는 지붕 처마 아래로 내민 우리의 하반신을 사정없이 적셨다. 누군가 집에서 나오더니 우리에게 웬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 무렵에는 학생들도 모두 학도호국단에서 교련을 받고 있어서 거수경례를 했다. 광길이가 경례를 하면서 어느 학교 누구며 여행 목적 등을 간단명료하게 군대식으로 얘기했다. 농부에게는 그것이 꽤나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서울서 내려온 학생들이라면 자유당을 무너뜨린 그 젊은이들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방에는 전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누가 보기에도 전쟁 중에 총을 들고 돌아쳤던 젊은이들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뒤에도 그런 경험을 했지만 시골 사람들은 우리에게 친근해지기 전에는 절대로 말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갑자기 어른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들어오라고 하더니 우리를 집안의 중간 마루에 앉게 하고는 아내를 불러서 뭐 끼니 될 게 없느냐고 물었고 아낙네가 찬밥 남은 게 있지만 보리밥이라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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