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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4>제 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29 공주 무령왕릉 발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1971년 봄 신혼생활의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결혼 직후 곧바로 소양강 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에 참여하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발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소양강 댐 발굴에서 돌아온 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고적(古蹟)을 조사하고 작성한 책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번역, 재발간하는데 열중해 있었다. 일제는 무슨 목적에선지 책을 대외비(對外)로 분류해 놓았었다. 갑자기 공주 출장명령이 떨어졌고 영문도 모르고 짐을 꾸렸다. 7월 7일의 일이었다.

은사인 김원룡(金元龍)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모시고 공주로 갔다. 무슨 일 때문인지 여쭈어 보고 싶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은사와의 대화는 어려웠다.

오후 3시쯤 공주 송산리 현장에 도착하니 동료인 지건길(池健吉·현 국립 중앙박물관장), 손병헌(孫秉憲·현 성균관대 교수) 등이 먼저 도착해서 이미 작업 중이었고 서울에서 내려온 보도진들도 보였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공주로 출장오게 된 연유를 알게 됐다. 공주 송산리는 웅진 백제시대 왕 내지는 왕족들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왕들의 구릉(丘陵)'으로 알려져 왔다. 안타까운 일은 무덤들이 모두 일제시대 도굴 피해를 봤다는 점이었다.

이들 무덤 가운데 벽돌로 만든 전돌무덤(塼築墳)인 6호는 백제무덤으로서는 유일하게 동·서·남·북 사방 벽에 사신(四神)이 그려진 사신도 벽화전돌무덤(四神圖壁畵塼築墳)으로 유명하다. 유적은 일제시대부터 보호되어 오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사적 13호로 지정, 보호해 왔다.

무령왕릉은 6호 무덤 보존대책의 하나로 봉분 뒤편에 배수로 파는 작업을 하다 발견하게 됐다. 6호 무덤의 벽그림(壁畵)은 세월이 갈수록 심하게 퇴락했다. 여름에는 밖의 공기는 무덥고 무덤 내부 공기는 선선해서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면서 이슬이 맺히는 결로현상(結露現狀)이 일어나 벽그림의 퇴락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장마철이면 물방울이 벽을 타고 흘러내려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했다.

정부는 6호 무덤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 뒤편을 가로지르는 배수로를 마련하기로 하고 6월 하순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가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작업 인부의 삽날에 벽돌(塼)이 걸렸다.

공사를 감독하던 건설업체의 현장소장은 예감이 이상해서 즉시 공주박물관 김영배(金永培)관장을 찾아가 "배수로 공사 현장에 백제시대 벽돌이 있으니 와서 봐달라"고 부탁했다. 김관장은 공주사범대학교(현 공주대학교) 안승주(安承周)교수를 즉각 송산리 현장으로 오게 하고 공사 현장소장과 함께 달려갔다.

송산리 현장에 도착한 김관장과 안교수는 배수로 작업 중 지하에서 발견된 벽돌을 보는 순간 '백제무덤이구나'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누구에 쫓기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김관장은 흥분할 만했다. 도굴되지 않은 백제 '처녀분'은 무척 희귀한 경우였다. 더구나 무덤은 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관장은 전날 밤 산돼지가 떼를 지어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꿈을 꿨다고 한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 모양'이라고 긴장하고 있던 차에 마침 벽돌 발견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김관장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한시라도 빨리 무덤을 파보고 싶어 안달이 났던 모양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현장소장은 아무래도 공사 감독관청인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알려야겠다고 판단하고 감독관인 문화재관리국 윤홍로(尹洪) 건축기사(현 문화재청 상근 전문위원)에게 상황을 알렸다. 급보를 받은 윤기사는 마침 부여지역의 문화재를 현장 점검하고 있다가 즉시 현장으로 달려왔다.

현장에 도착한 윤기사는 김관장과 안교수 등이 흥분 상태에서 작업을 지휘하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공사감독관 직권으로 일체의 작업을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문화재관리국에 상황을 보고하고 정식 발굴 조사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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