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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감정' 방송·연예계도 강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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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전국적으로 반미 시위와 항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그 여파가 방송가와 연예계에도 미치고 있다.

KBS2 '뉴스 8'을 진행해 온 황정민(사진 (左)) 아나운서가 최근 반미 시위와 관련한 발언에 책임을 지고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씨는 지난달 26일 방송에서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와 관련, 대학생들의 미군 영내 기습 시위에 대한 보도가 나간 직후 "보기가 참 부끄럽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후 KBS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우리가 주권을 찾기 위한 행동이 왜 부끄럽나"라는 등 이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비해 사실 전달만을 하고 있는 내 자신과 공무 중인 미군에 대해 조사할 권리도 없는 한미행정협정(SOFA)을 가진 사실이 부끄럽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네티즌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황씨는 30일 "발언의 뜻이 잘못 전달돼 안타깝지만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제작진에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 8'의 후임 앵커는 공정민 아나운서가 유력하다.

가수 이정현(사진 (右))은 영화 '007 어나더데이'(12월 31일 개봉)에 출연한 재미동포 배우 릭윤과의 토크쇼 출연을 거절했다. 이정현은 당초 3일 KBS2 '행복 채널'에 릭윤과 함께 출연하기로 했으나 최근 반미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고려해 릭윤과의 공동 출연을 전격 취소했다.

이정현의 매니저는 "이미 지난 앨범에서도 문제 의식을 갖고 노래를 했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출연하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정현은 1집 활동 당시 릭윤과 모 이동통신 광고를 찍으며 친분을 쌓았다.

'007 어나더데이'는 차인표가 '남북한 상황을 너무 냉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출연 요구를 거절했던 작품이다. 최근엔 영화 전반에 남북한에 대해 멸시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007 안보기 운동' 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북한군 장교로 출연한 릭윤은 지난 1일 영화 홍보차 입국했다.

'행복 채널' 제작진은 이정현의 출연 거부와는 별도로 릭윤 출연에 따른 비난 여론에 부담을 느껴 그의 출연 자체를 신중하게 재검토 중이다.

이 밖에 지난달 29일 '2002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의 개막 무대에 나선 가수 싸이는 마이크 스탠드로 모형 미군 장갑차를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또 언더록밴드 트랜스픽션은 미군들에 대한 분노 표시와 죽은 소녀들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당분간 소매에 '상장'을 두르고 출연할 계획임을 밝혔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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