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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로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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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4년 전 사거리 4천㎞의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가장 겁먹은 나라가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때를 기다린듯 첩보위성 발사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한국 정부가 당황했다. 우주 개발 경쟁을 그저 부자나라들의 과학기술 쇼 정도로만 여길 수 없게 됐다.

이웃나라 중국은 이미 70년부터 독자 개발한 '장정(長征)1호'운반 로켓을 이용해서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을 탑재해 발사하는 업무를 해외로부터 발주받기에 이르렀다.

1972년은 우리나라 군수산업에서 의미있는 해로 기록되고 있다. 자주국방을 강조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를 세워 백곰 미사일 개발을 서둘렀던 시기다.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지대공)을 모델로 부품을 국산화하고 이를 지대지 미사일로 탄생시켰다. 당시의 연구기술이 뒤이어 별도로 발족한 항공우주연구원의 고체 로켓 추진기관에 활용됐다.

위성 발사체용으로 국산 액체연료가 개발되기까지에는 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97년 액체 산소와 최고급 등유를 섞어 폭발시킴으로써 로켓이 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탱크를 장착하는 기술이 사용됐다. 지난 28일 오후 충남 서해안에서 우주개발용 로켓(KSR-3)발사가 성공한 것은 오로지 과학한국의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다져진 연구원들의 집념의 결과였다.

로켓이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을 때 발사장에 배치됐던 80여명의 전문 운영요원들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 한차례의 발사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엔진의 성능도 입증됐다. 어느 나라도 가르쳐주지 않은 독자적 기술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로켓산업은 아직도 험난한 길에 서있다. 27년 전에 세계에서 세번째로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린 일본은 94년에 고도 3만6천㎞의 정지궤도에 무게 2t의 위성을 올릴 수 있는 H2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첩보위성을 띄우면 한반도가 일본의 눈 아래에 깔린다. 로켓기술은 전시·평화시에 따라 무기로 개발되거나 통신 또는 자원탐사위성으로 활용되는 양날의 칼이다.

소련의 스커드 미사일을 복사한 북한의 기술은 우리보다 5∼10년 앞서 있다. 시험비행 고도가 42㎞인 KSR-3가 원 궤도나 타원 궤도에 진입하려면 궁극적으로 3백∼1천5백㎞ 높이까지 치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좌절과 실패도 겪게 될 것이다. 위성산업이 민간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우주개발 꿈의 실현은 국민의 끊임없는 지원과 과학인력의 양성에 달려 있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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