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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를 '사형'시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현재 세계는 잔인한 형벌인 사형을 폐지하고 생명권과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잔인한 범죄자들을 '잔인한 형벌'인 사형으로 죽이기보다는 종신형을 통해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추세인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사형 폐지국은 1백11개국이고 사형 유지국은 84개국이다. 또 매년 2∼3개국이 사형 폐지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국회의원 1백55명이 '사형 폐지를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사형 폐지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형제는 왜 폐지돼야 하는가.

우선 사형제는 극도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형벌임과 동시에 생명권을 침해하는 제도다. 사형은 유일한 신체형이자 국가의 통제영역이 아닌 인간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다. 법이 개인에 대한 살인을 금지하듯, 국가에 의한 생명박탈 행위 또한 법으로 금지돼야 한다.

사형제도는 또한 인간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판에 의한 치명적 결과를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형벌이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99명의 사형수가 형 확정 후 무죄가 입증됐다는 사실은 사형제도의 치명적 결함을 잘 보여준다.

또한 형벌의 불평등성이 가장 돋보이는 제도가 바로 사형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주장이 사형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한국의 사형 대기자는 모두 56명인데 이들 중 대학졸업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미국에서도 사형집행의 약 80%가 흑인 및 소수민족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사형은 정치적으로도 악용되고,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사형은 또한 다른 형벌과는 달리 범죄자의 갱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사형집행에 참여하는 교도관들을 야수화시키는 폭력적 요소를 담고 있다.

1764년 최초로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이탈리아 형법학자 베카리아( Beccaria)는 "도대체 인간이 사람을 죽일 권리를 누구로부터 부여받았는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죽일 권리가 없다면 그러한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없다. 인간은 타인의 생명에 대해 아무런 합법적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형은 어떠한 권리에도 근거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사형 폐지를 통한 인권 실현과 자유·평등을 향해 전진하는 인류 발걸음의 초석이 됐다. 그로부터 약 2백50년이 지난 지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모든 국가와 인류를 향해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오랜 형벌인 사형에 대해 재고해야 하며, 사형 폐지를 위한 인류의 발걸음에 동참해야 한다. 감형 없는 종신형을 통해 흉악한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고, 최소한 생명권을 보장하면서 교화를 통한 사회적 반성의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한다.

사형 폐지를 모든 국가에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함과 동시에 사형이 인권침해이자 생명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선언해야 한다.

흉악한 범죄 결과에 대해 감정과 폭력이 아닌 이성으로 대처할 때, 즉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적 사회가 될 때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이제 한국도 사형을 사형시킬 때다.

사외(社外)기고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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