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동두 전 서울백제병원장:정신과 환자 감금 진료의 벽을 깬 선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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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6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노동두(盧東斗) 박사는 국내 의료계에 미국의 선진 정신 치료기법을 도입한 원로다. 56년 지기인 정일영(鄭一永·76)전 외무부 차관은 "그는 교제와 사색, 그리고 풍류에 능한 로맨티스트였다"며 애도했다.

고인은 195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57년 도미해 미국 위스콘신·미네소타대에서 전공의 과정 등을 거쳤다. 귀국후 가톨릭의대·순천향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소아정신의학회를 창설해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76년 한남동에 서울백제병원을 설립한 뒤 낮병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낮병원 서비스는 정신과 환자들을 외래 진료하는 것으로 3백65일 철창에 가둔 상태에서 치료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장남 만희씨는 "개업 초기 부친은 돈벌이가 안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이유에서 값비싼 뇌파 측정장치를 도입하는 등 연구에 애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盧박사는 타계 직전까지 노익장을 과시했다. 85년 뇌종양의 일종인 수막종에 걸렸으나 수술로 완쾌했고, 91년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됐으나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말년에 불교와 도학에 심취한 그는 2000년 10월 도올 김용옥의 TV강의를 듣다가 기침이 잦다는 이유로 퇴장당하는 수모를 겪어 화제를 모았다. 고인은 서양 정신의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인격적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며 도올의 미숙함을 지적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평생 친구였던 문인 한운사(韓雲史·79)씨는 '속세를 벗어났으니 축하하네. 나도 머지않아 감세'라는 비문으로 추모했다. 고인은 박순기 여사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다. 정신과 의사인 만희씨가 서울백제병원장으로 가업을 잇고 있다. 각종 저술과 방송 등으로 알려진 정신과 의사 양창순 씨가 만희씨의 부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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