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수학硏 설립 빠를수록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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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학은 모든 인류 문명의 지적 최고봉에 있다. 국가안보에서 과학 분야와 금융투자 정책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수학 분야의 도움 없이는 미국이 산업과 통상의 최우위 교두보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

1998년 3월에 나온 미 국립과학재단(NSF) 선임연구평가단의 특별보고서 내용이다. 미국이 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유지할 방도를 모색하고자 함이 보고서의 목적이었다.

미국은 수학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미국에는 20년 역사의 버클리 수리과학연구소(MSRI) 등 네 개의 국책 수학연구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미 국립과학재단은 국책수학연구소 세 개를 새로 세우는 데 2천4백만달러(약 3백억원)를 5년에 걸쳐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 9백만달러를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이는 미국에서 수학이 국가적 핵심 지원분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불황이면서도 수학과 같은 기초과학에 과감히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오랜 경험을 통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미래의 항구적 부국강병을 위한 최선책임을 알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에의 투자는 장래의 우수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직결되며 다른 학문을 발전시키는 토양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계의 석학들은 21세기의 핵심 기술들은 수학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학의 로직에 훈련된 사람들은 종합적인 분석능력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그래서 국방·경제 등 수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반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한다. 미국 월가에는 1천여명의 수학자들이 모여 있고, 컴퓨터·군수안보·정보통신 분야에 수학자들이 대거 영입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와 같은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으로는 노벨상과 필즈 메달을 수상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또 응용과학 위주로 지원하고 기초과학을 소홀히 하면 영원히 중진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의 경제 규모와 과학기술의 수준에서 실천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국책 수학연구소를 하루 빨리 설립해야 한다. 우리도 두뇌의 산실이 되고 박사 후 연구원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센터가 될 수학연구소를 하나쯤은 세울 시기가 됐다.

수학·과학 영재들에게 병역특례를 줘야 한다. 우수한 과학 두뇌들이 최고의 창조적 연구를 할 수 있는 20대 초반에 지속적으로 연구에 골몰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자는 것이다. 세계적인 수학 및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메달을 획득한 과학 영재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대학생들을 학병으로 뽑으면서도 이공계 학생들은 제외시켰다. 그러한 과학도에 대한 우대가 오늘날 노벨상을 연거푸 수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수학·과학 분야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이는 초·중등생에게 월반이나 조기 진학의 혜택을 주어 초반부터 키워야 한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앞에서 수레바퀴를 끄는 우수한 천재들에 의해 진일보했다. 가능성이 보이는 어린 싹들을 국가가 키워주는 입체적 교육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우수한 영재들을 발굴해 관리하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기관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정책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정책은 과학기술 전반을 발전시키고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선진국처럼 응용 과학자들이 오히려 수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노벨상과 필즈메달 수상자의 출현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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